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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활자에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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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7-08-01     조회 : 1,685  



[종류]

활자의 종류는 재료에 의하여 금속활자 · 목활자 · 도활자 등으로 구분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그중 금속활자와 목활자가 주로 쓰여졌다.


(1) 금속활자 옛적에는 주자(鑄字)라고 하였으나, 재료에 따라 동활자 · 연활자 · 철활자 등으로 구분된다. 그중 동활자는 놋쇠활자라고도 말하며,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 그 합금성분은 구리 · 아연 · 주석 · 철 등으로 되어 있으나, 구성비율은 활자마다 달라 각각 차이가 있다. 연활자는 주석활자라고도 일컬으며, 옛 활자로는 한번밖에 사용되지 않았다. 철활자는 무쇠활자라고도 하며 관서와 민간에서 몇 종씩 만들어 사용하였다. 이들 금속활자를 주조한 시대순으로 요설하면 다음과 같다.
1) 증도가자(證道歌字)

13세기초 무렵에 주조하여 《남명천화상송증도가 南明泉和尙頌證道歌》를 찍어낸 금속활자. 그 주자로 찍은 증도가가 강화로 천도한 1239년에 번각 유통되었는데, 그 번각본이 2종 전래되고 있다.

2) 상정예문자(詳定禮文字)

1234∼1241년에 강화로 천도한 무인정부가 《상정예문》을 28부로 찍어 각 관서에 나누어 주었을 때 쓰인 주자.

3) 흥덕사자(興德寺字)

1377년에 청주목의 교외에 있던 흥덕사가 불서를 찍기 위하여 주조한 송설체(松雪體)계의 주자. 이 활자로 찍은 《불조직지심체요절 佛祖直指心體要節》 하권과, 같은 활자의 번각본(번刻本)인 《자비도량참법집해 慈悲道場懺法集解》 상하권이 2종 전래되고 있다.

4) 고려 복(복)자

개성의 개인 무덤에서 출토된 송설체계의 동활자. 복(복)자가 옥편과 자전에도 나오지 않는 벽자임을 고려하면 휘자(諱字)를 찍기 위하여 만들어 쓰다가 장본인이 죽자 함께 묻은 듯하다. 글자체로 미루어 14세기의 주조로 여겨진다.

5) 계미자(癸未字)

조선조에서 최초로 태종이 1403년에 남송본 옛 주 달림의 《시경》 · 《서경》 · 《춘추좌씨전》의 글자를 자본으로 주조한 큰자와 작은자의 동활자. 주조한 해의 간지(干支)를 따서 계미자라 일컫는다.

6) 경자자(庚子字)

조선조에서 세종이 두번째로 1420년에 원판본계의 글자를 자본으로 주조한 큰자와 작은자의 동활자. 주조한 해의 간지를 따서 경자자라 일컫는다.

7) 갑인자(甲寅字)

조선조에서 세종이 세번째로 1434년 갑인에 명판본 《효순사실 孝順事實》 · 《위선음즐 爲善陰즐》 · 《논어》 등에서 필요한 글자를 가려내고, 부족한 것은 뒤에 세조가 된 진양대군 유(晉陽大君 )가 닮게 써서 자본으로 삼고 주조한 큰자와 작은자의 동활자. 여기서 활자의 주조술과 조판술이 절정에 이르렀다.

8) 갑인자 병용 한글자(월인석보자)

세종이 1447년에 승하한 소헌왕후(昭憲王后)의 명복을 빌고자 국역본 《석보상절 釋譜詳節》과 국한문본 《월인천강지곡 月印千江之曲》을 찍기 위하여 주조한 고딕인서체 큰자와 작은자의 한글동활자. 한자는 갑인자, 한글은 이 활자로 찍은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한글활자는 오로지 국한문본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을 찍기 위하여 주조한 데서, ‘월인석보자’라 일컫기도 한다.

9) 병진자(丙辰字)

1436년 병진 7월에 사정전훈의(思政殿訓義)의 《자치통감강목 資治通鑑綱目》의 강(綱)에 해당하는 큰자를, 후일 세조로 즉위한 진양대군 유에게 쓰게 하여 자본으로 삼고 연(鉛)으로 주조한 큰 활자. 옛 주자에서 연을 재료로 주조한 것은 이것이 처음이다.

10) 경오자(庚午字)

1450년 경오에 안평대군 용(安平大君瑢)의 글씨를 자본으로 주조한 큰자와 작은자의 동활자.

11) 을해자(乙亥字)

1455년 을해에 강희안(姜希顔)의 글씨를 자본으로 주조한 큰자 · 중간자 · 작은자의 동활자. 글자체가 편평하고 대체로 폭이 넓은 둥근 필의의 계통이며, 중간자에 강희안 글씨의 특징이 잘 나타나고 있다.

12) 을해자 병용 한글자(능엄한글자)

1461년 9월에 국역된 《대불정수능엄경 大佛頂首楞嚴經》에서 한자가 을해자, 한글이 이 활자로 찍혀지고 그 이후 을해자와 한쌍이 되어 인쇄되는 점에서 ‘을해자 병용 한글자’로 일컫게 된 것이다. ‘을해한글자’로 일컫는 이도 있으나, 이 한글활자가 1415년 을해에 주조된 것이 아니므로 옳지 않다. 그 활자가 국역본 《능엄경》에 처음으로 쓰인 데서, ‘능엄한글자’로 일컫는 것은 일리가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13) 정축자(丁丑字)

1457년 정축 9월에 젊은 나이로 죽은 의경세자(懿敬世子, 뒤에 덕종으로 추존됨)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세조가 《금강경》 정문의 큰자를 몸소 써서 자본으로 삼고 주조한 큰자 동활자.

14) 무인자(戊寅字)

1458년 무인에 《교식추보법가령 交食推步法假令》의 본문 큰자와, 《역학계몽요해 易學啓蒙要解》의 본문 큰자 및 가는주의 특소자를 찍기 위하여 주조한 동활자.

15) 을유자(乙酉字)

1465년 을유에 구결본(口訣本)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 大方廣圓覺修多羅了義經》을 찍기 위하여 정난종(鄭蘭宗)에게 글자본을 쓰게 해서 주조한 큰자 · 중간자 · 작은자의 동활자.

16) 을유한글자

1465년 을유에 《원각경》의 구결을 찍기 위하여 주조한 한글동활자. 이 경우는 같은 해에 국한문자가 주조되었으므로 바로 ‘을유한글자’로 명칭할 수 있다.

17) 갑진자(甲辰字)

1484년 갑진에 대내 소장의 《구양공집 歐陽公集》과 《열녀전 烈女傳》, 그리고 부족한 글자는 박경(朴耕)에게 쓰게 한 글자본으로 주조된 큰자와 작은자의 동활자. 종래의 어느 활자보다 크기가 아주 작으면서도 활자 모양이 해정하고 예쁜 것이 특징이다.

18) 계축자(癸丑字)

1493년 계축에 명판본 《자치통감강목 資治通鑑綱目》의 글자를 자본으로 주조한 큰자와 작은자의 동활자.

19) 병자자(丙子字)

1516년 병자에 중국판 《자치통감》의 글자를 자본으로 활자를 주조하던 중 심한 가뭄으로 일단 중지했다가 1519년 기묘에 다시 소격서(昭格署)와 지방 사찰(寺刹)의 유기를 거두어 주조를 계속하여 보탠 큰자와 작은자의 동활자. ‘기묘자’를 따로 일컫는 이도 있으나, 이 두 활자의 글자체는 근본적으로 같은 계통의 것에 해당한다.

20) 인력자(印曆字)

16세기 전기 무렵에 관상감에서 책력을 찍기 위하여 무쇠로 주조한 큰자와 작은자의 필서체 활자. 임진왜란 후에도 부족한 것을 나무활자로 보충하며 한동안 쓰여졌다.

21) 경진자(庚辰字)

1580년 경진에 갑인자본 《대학연의 大學衍義》를 글자본으로 9개월 걸려 주성한 큰자와 작은자의 동활자. 갑인자를 두번째로 개주한 것이므로 ‘재주갑인자’라고도 일컫는다.

22) 을해자체 경서자(乙亥字體經書字)

1587년 무렵에 《소학》 · 《대학》 · 《중용》 · 《논어》 · 《맹자》 · 《효경》 등의 국역경서를 찍기 위하여 을해자체를 닮으면서도 특징있게 개주한 동활자. 주조년이 확실하지 않아 활자체와 주성목적에 의하여 활자명을 붙인 것이다.

23) 경서 한글자

1587년 무렵에 국역 경서의 한글을 찍기 위하여 주조한 큰자와 작은자의 동활자.

24) 무오자(戊午字)

1618년 무오에 갑인자본을 바탕으로 주조한 큰자와 작은자의 동활자. 이것이 갑인자를 세번째로 개주한 것이 되므로 ‘삼주갑인자’라 일컫기도 한다.

25) 무신자(戊申字)

1668년 무신에 김좌명(金佐明)이 수어청(守禦廳)에서 갑인자본을 바탕으로 주조한 큰자와 작은자의 동활자. 갑인자의 네번째 개주가 되므로 ‘사주갑인자’라 일컫기도 한다.

26) 낙동계자(洛東契字)

1673년 무렵 낙동계라는 민간의 사설단체가 주조한 3만5천여자의 동활자. 정부가 1677년에 현종실록을 찍을 때 사들이고 더 주조 혼합하여 사용하였다. 따라서 낙동계자는 1673년부터 1677년까지의 사이로 한정된다.

27) 병진 왜언자(丙辰倭諺字)

1676년 병진에 안신휘(安愼徽)가 쓴 일본문자 이로하(伊呂波)의 히라가나(平假名)를 글자본으로 교서관이 주조한 동활자. 지방에서 거듭 새겨낸 판본과 식별하기 위하여 ‘교서관왜언자’라 일컫기도 한다.

28) 현종실록자(顯宗實錄字)

1677년에 현종실록을 찍기 위하여 위의 ‘낙동계자’를 사들이는 한편 4만8천여자의 활자를 더 주조 혼합하여 역대의 실록을 비롯한 어제 · 각종 지장, 그리고 일반 책까지 찍어낸 동활자.

29) 한구자(韓構字)

김석주(金錫胄)가 1677년 무렵 한구(韓構)의 독특하고 매력있는 필서체의 작은자 글씨를 바탕으로 사사로이 주조한 동활자. 이것을 1695년에 정부가 사들여 책 인쇄에 사용하였다.

30) 전기 교서관 인서체자(前期校書館印書體字)

1684년 이전 무렵에 교서관이 명판본에서 인서체자를 글자본으로 택하여 주조한 인서체의 무쇠활자. 우리나라 금속활자에 처음으로 적용된 인서체자인 것이 그 특징이다.

31) 원종자(元宗字)

1693년에 인조의 아버지인 원종이 쓴 글자를 바탕으로 주조한 동활자. 글자획에 원종의 예리한 필력이 잘 나타나고 있다.

32) 원종 한글자

1693년에 국역본 맹자를 찍기 위하여 원종이 쓴 글씨를 자본으로 주조한 한글활자. 한글활자도 인서체에서 필서체의 구성으로 바뀌는 특징이 잘 나타나고 있다.

33) 숙종자(肅宗字)

1693년에 원종자로 찍은 국역본 맹자의 머리에 붙은 숙종어필의 발문을 찍는 데 쓰인 큰자 동활자.

34) 후기 교서관 인서체자(後期校書館印書體字)

1723년 이전 무렵에 교서관이 앞서 만든 인서체자를 다시 주조한 무쇠활자. 이 후기 무쇠활자는 먼저 것에 비하여 글자체가 정연하고 가로획이 가늘어져 인서체다운 모양이 갖추어졌다.

35) 율곡전서자(栗谷全書字)

1749년에 《율곡선생전서 栗谷先生全書》를 찍기 위하여 무쇠로 주조한 인서체활자.

36) 임진자(壬辰字)

1772년 임진에 갑인자로 찍은 《심경 心經》과 《만병회춘 萬病回春》의 글자를 자본으로 15만자를 주조한 오주갑인자의 동활자.

37) 정유자(丁酉字)

1777년 정유에 평양감사 서명응(徐命膺)에게 명하여 갑인자 15만자를 더 주조케 하여 따로 두고 사용하다가 1794년의 주자소 화재로 소실된 육주갑인자의 동활자.

38) 재주 한구자(再鑄韓構字)

1782년 임인에 평안도관찰사 서호수(徐浩修)에게 명하여 한구자본을 바탕으로 8만여자를 다시 주조, 내각에 두고 쓴 동활자. 그해의 간지로 일컬어 ‘임인자’라고도 한다.

39) 정리자(整理字)

1795년에서 이듬해에 걸쳐 청판본 《강희자전 康熙字典》의 글자를 자본으로 새긴 ‘생생자’에 바탕하여 주조한 큰자 16만자, 작은자 14만자의 인서체 동활자. 주조한 해의 간지를 따서 ‘을묘자(乙卯字)’라 일컫기도 한다.

40) 정리자체 철활자(整理字體鐵活字)

1798년 무렵에 민간이 정리자를 닮게 주조하여 상업적으로 사용해온 인서체의 무쇠활자.

41) 필서체 철활자

1800년 초기에 민간이 필서체자를 바탕으로 주조하여 상업적으로 사용해온 무쇠활자.

42) 전사자(全史字)

1816년에 순조의 생모인 수빈박씨(綬嬪朴氏)의 오빠 박종경(朴宗慶)이 청나라 취진판(聚珍版) 《전사 全史》의 글자를 자본으로 20만자를 주조한 인서체 동활자. 그의 호를 따서 ‘돈암인서체자(敦巖印書體字)’로 일컫는 이도 있다. 활자모양이 신연활자처럼 균정하고 크기가 적당하며 주조가 정교하다.

43) 재주 정리자(再鑄整理字)

1858년에 정리자본을 바탕으로 큰자와 작은자 8만9천여 자를 다시 주조한 인서체 동활자.

44) 재주정리자 병용 한글자

언제 주조하였는지 기록이 없으나, 1808년에 나온 《심상소학 尋常小學》이 이 한글활자로 찍혀졌으며, 그 실물이 지금도 국립중앙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45) 삼주 한구자(三鑄韓構字)

1858년에 한구자본을 바탕으로 하여 세번째로 3만1천여 자를 주조한 동활자. 활자의 글자획에 박력이 없고 만든 솜씨가 거칠어 별로 이용되지 않았던 듯 그 인본이 별로 보이지 않으나, 그 실물이 역시 국립중앙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46) 신연활자

근대에 접어들어 서구의 신연활자로 국한문자료가 인쇄되기 시작하였는데, 정부에서 1883년 박문국(博文局)에서 처음으로 《한성순보 漢城旬報》를 찍어 발행하였다.


(2) 목활자
우리나라에서 사용해온 목활자는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나. 제작의 실제를 알 수 없는 것이 너무나도 많다. 이들 활자의 제작 사실이 일부라도 밝혀진 것에 대하여 시대순으로 요설하면 다음과 같다.

1) 서적원자(書籍院字)

1395년에 백주지사(白州知事) 서찬(徐贊)이 만들어 서적원에 바친 목활자. 이 활자로 서적원이 《대명률직해 大明律直解》 100여 부를 찍어 반포하였다.

2) 녹권자(錄券字)

1395∼1397년에 공신도감이 원종공신(原從功臣)들에게 내려준 녹권을 찍는 데 쓰인 목활자. 건국 초기여서 활자를 만든 솜씨가 치졸하여 인쇄가 조잡하다.

3) 동국정운자(東國正韻字)

1447년 9월에 완성을 본 《동국정운》을 찍기 위하여 진양대군 유의 글씨체를 자본으로 만든 한자 큰자의 목활자. 새김이 정교하여 인쇄가 깨끗하다.

4) 동국정운 한글자

1447년에 《동국정운》의 한글 큰자를 찍기 위하여 만든 나무활자. 한글체는 강직한 직선으로 결구한 고딕 인서체인 것이 특징이다.

5) 홍무정운자(洪武正韻字)

1455년에 《홍무정운역훈 洪武正韻譯訓》을 찍기 위하여 동국정운자와 비슷한 글자체를 자본으로 만든 한자 큰자의 목활자.

6) 홍무정운 한글자

1455년에 《홍무정운역훈》의 한글을 찍기 위하여 만든 나무활자. 한글체는 부드러운 필서체로 결구된 것이 특징이다.

7) 을유자체 목활자

15세기 후반 무렵 어느 사찰이 주관하였는지 밝혀지고 있지 않으나, 주로 장소류(章疏類)의 불경을 찍어내기 위하여 만든 을유자체의 나무활자.

8) 인경자(印經字)

1495년 원각사에서 승하한 성종의 명복을 빌고자 정현대비(貞顯大妃)와 인수대왕대비(仁粹大王大妃)가 주관하여 대대적으로 불경을 간행하였는데, 이때 동일한 내용의 단일 발문을 찍기 위하여 목활자를 만들기 시작, 계속 불경을 찍어내고자 이듬해에 내탕의 도움을 받고 새겨낸 나무활자들. 글자체는 해정한 필서체이고, 새김이 정교하여 활자 모양이 단정하고 가지런하다.

9) 인경한글자

1496년에 위의 대비들이 국역본 불경의 한글을 찍기 위하여 만든 한글목활자. 부드러운 필서체의 한글활자이다.

10) 금성자(錦城字)

16세기 전반 무렵에 금성(錦城: 羅州牧의 옛 칭호)에서 을해자계를 닮게 쓴 필서체를 바탕으로 만든 목활자.

11) 호음자(湖陰字)

16세기 후반 무렵에 정사룡(鄭士龍)이 해정한 필서체자를 자본으로 하여 사사로이 만든 목활자. 새김이 정교하며 초인(初印)의 《호음잡고 湖陰雜稿》는 인쇄가 매우 깨끗하다.

12) 추향당자(秋香堂字)

16세기 후반 무렵에 기성(箕城, 평양의 옛 칭호)의 추향당에서 갑진자를 닮은 글자체로 만든 목활자.

13) 효경대자(孝經大字)

1590년에 한자본 《효경대의 孝經大義》의 큰자를 찍기 위하여 부드러운 둥근 필의의 송설체 글자를 자본으로 만든 나무활자. 작은자는 을해자체 경서자로 찍었다.

14) 훈련도감자(訓鍊都監字)

17세기 전반에 훈련도감이 옛 활자의 글자체를 본따서 만든 각종의 나무활자. 그 종류에는 갑인자체 훈련도감자, 경오자체 훈련도감자, 을해자체 훈련도감자, 갑진자체 훈련도감자, 병자자체 훈련도감자 등이 있다.

15) 공신도감자(功臣都監字)(임란 직후)

17C 전반에 공신도감이 공신들에게 내려줄 녹권과 회맹록 등을 찍기 위하여 만든 나무활자.

16) 실록자(實錄字)

1603∼1606년에 걸쳐 조선 전기의 13대 실록을 찍기 위하여 만든 나무활자를 비롯한 그뒤의 선조 · 인조 · 효종을 찍기 위하여 만든 나무활자의 총칭. 그러나 구체적으로 구분할 때는 역대 실록을 찍은 활자와 선조 · 인조 · 효종실록을 찍은 활자는 크기와 글자체 그리고 정교도에서 각각 차이가 있어 따로 활자명칭을 붙이기도 한다. 즉 1617년에 《선조실록》을 찍는 데 쓰인 활자를 ‘선조실록자’, 1652년에 《인조실록》을 찍는 데 쓰인 활자를 ‘인조실록자’, 1660년에 《효종실록》을 찍는 데 쓰인 활자를 ‘효종실록자’라 일컫고 있다.

17) 내의원자(內醫院字)

1608∼1615년까지 내의원이 별도로 국(局)을 설치하고 의관(醫官)들이 의서를 엮어 교정 감수하여 찍어낼 때 쓰인 나무활자.

18) 내의원 한글자

1608∼1615년까지 내의원이 국역 의서를 찍어내는 데 쓰인 한글 나무활자.

19) 문계박자(文繼朴字)

1621년에 경상도 관찰사 정조(鄭造)가 자기 조상의 문집을 찍기 위하여 친구 문계박에게 부탁, 제작하여 인쇄하는 데 쓴 나무활자.

20) 나주자(羅州字)

1626년에 나주목이 만든 갑인자계를 닮은 필서체 나무활자.

21) 교서관 필서체자(Ⅰ)

1648년 무렵에 교서관이 임란 때 중단되었던 국가의 인쇄업무를 부활하고 만들어 쓴 각종의 필서체 나무활자들. 활자의 제작이 아직 조잡하여 인쇄가 깨끗하지 못한 편이다.

22) 무신자 병용 한글자

1668년에 주조한 무신자(戊申字)와 한쌍이 되어 국한문본에 쓰인 한글활자. 무신자는 금속활자이나, 한글활자는 나무로 만들어졌다.

23) 교서관 필서체자(Ⅱ)

1688년에 교서관이 그 당시 유행한 작고 해정한 필서체자를 자본으로 만든 나무활자. 이 활자로 많은 시문집을 찍어낸 것이 특징이다.

24) 후기 교서관 인서체자 병용 한글자

1723년 이전 무렵에 주조한 후기 교서관 인서체자와 한쌍이 되어 국한문본의 인쇄에 쓰인 한글활자. 후기 인서체자는 무쇠활자이나, 한글활자는 나무로 만들어 사용하였다.

25) 도활자

1729년무렵에 이재항(李載恒)이 황해병사로 해주병영에 있었을 때, 오지그릇 만드는 찰흙을 곱제 빻아 유자나무즙과 같은 즙액을 섞어 잘 빚은 다음 글자를 새겨 겉에 백랍을 두텁게 칠하여 구워 만든 오지활자.

26) 경서정음자(經書正音字)

1734년에 이성빈(李聖彬) 등의 역관이 사역원(司譯院)에서 《사서》와 《삼경》의 역학서 원문에 대한 중국의 바른 음을 표기하여 찍어내는 데 쓰인 한자의 나무활자. 글자체는 갑인체를 닮은 단정하고 유려한 진체계(晉體系)이다.

27) 경서정음 한글자

1734년에 역관들이 사역원에서 역학서의 원문에 표기한 한글을 찍어내기 위하여 만든 나무활자. 활자를 새긴 솜씨가 비교적 정교하다.

28) 임진자 병용 한글자

1772년에 갑인자를 다섯번째로 개주한 임진자와 한쌍이 되어 국한문본의 인쇄에 쓰인 한글 활자. 임진자는 동활자이고, 한글활자는 언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으나 나무로 되어 있다.

29) 방 홍무정운대자(倣洪武正韻大字)

1772년에 교정본 《자치통감강목속편 資治通鑑綱目續編》의 강(綱)에 해당하는 본문의 큰 자를 찍기 위하여 홍무정운자를 본떠 그 글자획을 크게 써서 새겨낸 큰 나무활자.

30) 정유자 병용 한글자

1777년에 갑인자를 여섯번째로 주조한 정유자와 한 쌍이 되어 국한문본의 인쇄에 쓰인 한글활자. 정유자는 동활자이나, 한글활자는 언제 제작하였는지 알 수 없지만 나무로 만들어졌다.

31) 기영필서체자(箕營筆書體字)

1791년에 평안관찰사 홍양호(洪良浩)가 《오산집 五山集》의 간행을 명받고 기영(箕營)에서 만든 필서체 나무활자. 글자체는 당시 유행했던 사자원풍의 필서체이다.

32) 생생자(生生字)

1792년에 청나라의 사고전서(四庫全書)에 들어 있는 취진판 《강희자전 康熙字典》의 글자를 자본으로 만든 크고 작은 인서체의 나무활자. 글자체가 큰자는 모양이 넙적하고 글자획이 굵으나, 작은자는 근대활자처럼 모양이 가는 인서체인 것이 특징이다.

33) 정리자 병용 한글자

1795년에서 이듬해에 걸쳐 생생자를 자본으로 주조한 정리자와 한 쌍이 되어 국한문본의 인쇄에 쓰인 한글활자. 정리자는 동활자이고, 한글활자는 《오륜행실도 五倫行實圖》의 국문을 찍기 위하여 나무로 만들었다. 그러므로 이를 오륜행실 한글자로 일컫기도 한다. 그 글자체는 마치 붓으로 쓴 것 같이 부드러운 필서체이다.

34) 춘추강자(春秋綱字)

1797년에 《춘추좌씨전 春秋左氏傳》의 강(綱)에 해당하는 경문의 큰자를 찍기 위하여 조윤형(曹允亨)과 황운조(黃運祚)에게 각각 한벌씩 쓰게 하여 자본으로 삼고 만든 나무활자. 두 글씨체를 비교하여 보면, 조체(曹體)는 글씨 획이 좀 가늘고 폭이 좁으며 서법이 얌전하고 예쁜 감을 느끼게 한다. 황체(黃體)는 글씨 획이 좀 굵고 폭이 넓적하며 그 서법이 활달하고 박력감을 느끼게 한다.

35) 성천자(成川字)

조선 정조 때의 문신 김한동(金翰東)이 성천의 임소에서 구하여 고향으로 돌아와 1798년 이후 문집 등을 찍는 데 사용한 필서체 나무활자.

36) 지겟다리획 인서체자

19세기 초무렵 민간이 만들어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부족과 마멸 활자를 새로 새겨 교체하고 보충하면서 주로 호남과 호서지방에서 문집 족보 등을 찍는 데 사용되어 온 나무활자. 글자체가 인서체이나 지겟다리획의 시작에서 특이하게 구부러지고 마무리에서 힘을 가하여 붓끝이 세모꼴로 넓적하게 퍼지게 했다가 붓끝을 위로 치켜올린 필법이 사뭇 특징적이다.

37) 장혼자(張混字)

1810년에 장혼(張混)이 작은 필서체자를 써서 자본으로 삼고 사사로이 만든 소형의 나무활자. 글자체가 소형이면서도 해정하게 결구된 필서체이며 그 모양이 예쁘고 인상적이다.

38) 장혼 한글자

1810년에 찍은 《몽유편 蒙喩篇》에서 한글을 보면 그 크기가 한자보다 더욱 작으면서도 그런대로 균형이 잡힌 필서체이다.

39) 금릉취진자(金陵聚珍字)

1815년에 남공철(南公轍)이 자기의 저서인 《금릉거사문집 金陵居士文集》 등을 찍어내기 위하여 사사로이 만든 독특한 필서체의 중간자와 작은자의 나무활자. 글자체는 여성의 필적답게 운필이 부드러우면서 세로로 길쭉하고 글자획의 파임에 굴곡상향성(屈曲上向性)이 나타나고 있는 필서인 것이 특징이다.

40) 전사자 병용 한글자

1816년에 주조한 전사자와 한 쌍이 되어 국한문본의 인쇄에 쓰인 한글활자. 전사자는 동활자이나, 한글활자는 언제 제작하였는지 알 수 없지만 나무로 만들어졌으며 만든 솜씨가 조졸한 편이다.

41) 훈몽삼자경자(訓蒙三字經字)

1825년에 박병은(朴秉殷)이 아동의 교육에 필요한 한자 경문을 석자씩 떼어 구결로 토를 달고 주석한 훈몽서(訓蒙書)를 찍기 위하여 만든 큰자와 작은자의 한자(漢字)와 구결자(口訣字)의 나무활자. 큰자와 작은자의 한자 글자체는 한호 글씨체를 방불케 한다.

42) 보광사자(寶光社字)

1869년에 양주 천마산의 보광사가 불서를 찍어내기 위하여 청나라 연경에서 구해온 판본에서 자본을 택하여 새긴 나무활자. 글자체가 청나라 불서 판본의 글자를 방불케 하는 인서체이나, 새김이 거칠어 글자 획과 모양이 가지런하지 않다.

43) 학부인서체자(學部印書體字)

1895년에 학부가 새로 개편하기 시작한 교과서를 찍기 위하여 후기교서관인서체자의 잔여분과 그 활자체를 자본으로 만든 나무활자를 섞어 사용한 인서체 활자. 인본에서 글자획이 마멸된 것은 원 활자이고, 글자획이 굵고 가지런하지 못한 것은 나무 활자이다.

44) 학부 인서체 한글자

1895년부터 개편하기 시작한 국한문본 교과서의 한글을 찍기 위하여 만든 인서체 한글활자. 이들 목활자는 응급적인 조처로 서둘러 새겨냈기 때문에 그 솜씨가 조잡한 편이다.

45) 야소삼자경자(耶蘇三字經字)

1895년에 훈몽삼자경의 체재를 본떠서, 기독교 교리의 중요 대목을 석자씩 구분하고 매자 아래 한글로 새김과 음을 표시한 형식의 야소경을 인쇄하는 데 쓰인 나무활자. 한자 큰자는 인서체이나, 한글 작은자는 일정하지 않고 대체로 신연활자를 사용하고 있다.


(3) 도활자
1729년 무렵에 이재항(李載恒)이 황해병사로 해주병영에 있었을 때, 오지그릇 만드는 찰흙을 곱게 빻아 유자나무즙과 같은 즙액을 섞어 잘 빚은 다음 글자를 새겨 곁에 백랍을 두텁게 칠하여 구워 만든 오지활자이다

사진은 도활자8책이다
크   기   16.5*25쎈치로 서문과 권지1-5권2책은 필사 나머지6잭은 도활자본이며
갑자년에 매입을했는데 5권2책이모자라필사한다고썼으며 남천정사 己巳5월복천 류 ㅇㅇ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