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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장정(裝幀)의 역사적 변화와 특성(개화기~196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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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7-05-08     조회 : 1,625  

국내 장정(裝幀)의 역사적 변화와 특성(개화기~1960년대)
  박암종/동서울대학 커뮤니케이션디자인과 교수

국내 장정(裝幀)의 역사적 변화와 특성(주1)

(개화기~1960년대)

머리글


동서양을 막론하고 책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인류문명의 기록을 남기기 위한 필사의 노력들을 발견할 수 있다. ‘기록(記錄)’과 ‘보존(保存)’이라는 절대절명의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으로 최초 책이 등장하면서부터 미적기능을 통한 시각적인 효과 보다는 보존을 위한 기능이 더욱 중요시 되었다. 그러나 활자문화가 대중화되고 책이 상품으로 인식되기 시작하면서 부터 보호·전달기능을 넘어서 보다 미적인 처리가 요구되었다. 이같이 책은 역사의 변화와 더불어 오래 보존이 가능하고 독특한 멋을 내기 위해 가죽, 나무, 비단, 철판, 비닐, 종이 등에 갖가지 화려한 문양을 첨가하면서 변모해 왔다.

우리나라는 출판문화대국 답게 동양의 다른 나라와는 달리 인쇄술은 물론 책을 다듬고 모양을 내는‘장정(裝幀)’에 대해 많은 관심을 기울여 왔다. 한장본(漢裝本)(주2)을 보게 되면 다양하고 독특한 제본방법은 물론 치자물을 들인 두꺼운 겉표지에 주로 능화판(菱花板) 무늬를 찍어 화려한 장정으로 꾸며 냈다. 그 색채와 문양의 아름다움 그리고 변하지 않는 종이의 질은 아직도 많은 이들이 감탄하고 있을 정도다.

장정은 책의 내용을 선명히 드러나게 할 뿐만아니라, 예술가에 의해 제작된 것이라면 그 자체가 독립된 작품으로서의 가치도 지니게 된다. 표지화나 삽화, 컷 모두 즉흥적으로 그려진 것이 아니라 당대 최고의 작가들에 의해 본격적인 작품으로 제작되기 때문이다.

시대상과 예술적인 진면목이 그대로 녹아있는 장정에 대해 그동안 우리는 밀도있는 연구로 접근한 바가 거의 없다.(주3) 다만 지금까지 장정에 대한 연구성과는 1993년 환기미술관에서 열렸던, 김환기 개인에 초점을 맞춘‘裝幀과 揷畵展’및 당시 발간된 전시회 도록이 거의 다인 셈이다.

이에 필자는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갖고 있는 근대 출판의 역사속에서 나타나는 장정의 역사적 변천과 그 흐름을 실체적으로 파악하고 그 담겨진 의의에 대해 검토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본 연구의 범위는 (1)개화기 이후 1960년대 까지 약 80년간에 걸쳐 발간된 (2)대표적인 소설과 시집 즉 문학서를 주 연구대상으로 하고 기타 몇가지의 수필과 잡지를 통해 (3)장정 스타일의 원형 찾기와 시대에 따른 변화·특성·의의 (4)그리고 대표적인 장정가(裝幀家) 등에 주안점을 두고 연구·검토하였다.


1.장정의 범위와 스타일에 따른 분류


출판물은 반드시 내용을 한눈에 알 수 있도록, 그 성격을 알리는 책표지(book cover)가 있다. 이는 책의 성격을 알리는 것과 함께 독자들에게 구매의욕을 갖게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표지디자인의 개념은 1차원적인 평면의 디자인으로 도서(圖書)에 있어서 겉 표면의 디자인으로 생각하면 된다. 그러나 우리는 표지디자인이라는 말 대신에 오래전부터‘장정(裝幀)’이라는 단어를 아주 익숙하게 사용하여 왔다. 장정이라는 말로 표시되는 작업은 책을 만드는 과정에 있어서 표지디자인 작업만을 말하기 보다는‘표지 만들기를 중심으로 한 이와 관련된 기타의 제반작업’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표지디자인’은 장정과 같은 의미로 많이 사용되고 있으나 명확히 구분하면 극히 외형의 표지부분에 한정한 작업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나‘장정’은 표지디자인을 비롯하여 자켓(jacket), 케이스(case), 상자(box) 그리고 면지 안쪽까지 그 범위가 확대된 상태이다. 즉 책의 외면의 얼굴에 해당하는 부분을 재료나 구조를 포함해서 디자인하여 제본하는 행위로써 어떤 면에서는 제품디자인 영역과도 약간 겹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서점에서의 진열효과를 높이는 매력적인 상품을 만드는 것이기도 하며 그런 면에서 패케이지 디자인(package design)으로도 통한다고 볼 수 있다.(주4)

한편 표지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를 간추려 보면

(1)문자(제목, 저자, 역자, 출판사, 요약, 약력 등)

(2)문자를 제외한 사진, 일러스트레이션, 문양, 기하학적 형태(비구상) 등으로 나눌 수가 있다.

주어진 평면을 구성하는 이러한 두가지의 큰 요소 외에도

(3)지질(紙質)과 클로스(cloth)의 종류

(4)인쇄 및 제본 방법

(5)케이스 제작

등이 장정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이같이 표지디자인과는 달리 범위가 확대되는 장정에 대하여 그동안 수없이 발행된 출판물들을 면밀히 분석해 보면, 대표적 제본 스타일(style)(주5)과 시각요소(visual element)의 운영방법에 따라 다음과 같이 크게 한장본 스타일(2가지)과 양장본 스타일(4가지) 두가지로 나눌 수가 있다.


●스타일로 분류한 장정의 종류


1)한장본(漢裝本) 스타일

*전통 한장본 스타일:원칙적으로 4~5침안정법으로 제작된 선장본(線裝本)(주6) , 닥나무를 원료로 한 전통한지에

능화문이 찍히고, 제호 및 권수를 무색 제첨(題僉)에 쓰거나 인쇄해 왼쪽 상단에 세로로 부착

*개량 한장본 스타일:주로 선장본이나 하드카바의 양장 스타일도 사용, 개량한지나 일반용지 사용, 제호와

권수를 색채와 지질이 다양한 제첨 사용


2)양장본(洋裝本) 스타일

*그리드 사용 스타일:단괘선 및 복괘선, 장식 괘선(화형(花形:floret)(주7) 사용

*구상화 사용 스타일:서양화, 동양화, 도안화 사용

*추상화 및 문양 사용 스타일:불규칙한 추상적 문양, 단순 및 반복 문양 사용

*문자 사용 스타일:활자체, 손글씨체, 레터링체 사용


2.시대배경


우리나라에는 1880년 초에 처음으로 근대 인쇄술이 전래되었다. 부산지역 일본인 거류민 단체인 부산항 상법회의소가 1881년 12월에 <조선신보(朝鮮新報)>를 창간했고, 이를 위해 일본에서 인쇄기기, 인쇄용지, 인쇄잉크를 들여왔다. 2년 후인 1883년(고종 20년) 개화파의 거두 박영효(한성판윤)가 인쇄기술자를 일본에서 초빙하여 통리아문박문국(通理衙門博文局)을 서울 재동에 세우고 그곳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인 출판물인 <漢城旬報>를 발간하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식 인쇄시설을 갖추었다는 것은 우리 문화사적으로 볼 때 획기적인 사실로 신문화의 시발점이 되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개항지를 중심으로 신문사와 인쇄소가 연이어 개설되었다.(주8) 이듬해인 1884년에는 박문국에 이어 광인사인쇄공소(光印社印刷公所)(주9) 가 근대식 인쇄기계와 납활자를 사용하여 <忠孝經集註合壁> <農政新編> 등을 찍어내면서 현재와 같은 출판물의 시대를 열게 되었다. 이때부터 서서히 출판물이 다량으로 복제, 발간되면서 초보적인 장정의 개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주10)

이렇게 격랑의 세월 속에서 맞이한 개화기에 일본의 강점으로 일본식 양장서가 본격적으로 도입되었고 급기야 우리의 전통적인 장정(한장본)은 점점 사라지게 되었다. 이때부터 양장서가 자리잡기 시작하였다. 우리나라의 개화기 부터 출판물에 있어서 장정이라는 것이 일본문화의 영향을 받아 일본과 거의 같은 스타일이 지속된 이유는 자명하다. 일본 사람들이 출판 시설과 기술을 독점하고 있었고 간간히 그들에게 미진한 기술이나마 전수받아 창의성없이 그대로 실행에 옮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와중 속에서도 일본 유학파들(회화 전공자들이 대부분)이 출판미술에 적극 참여 하였으면서도 우리의 전통적인 의식과 그 형상의 표출이 책속에 그대로 스며들어 남겨진 것은 퍽이나 다행스런 일이다.

광복 이후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일본의 문화잔재가 청산되기는 커녕 그대로 답습되었다. 그들이 쓰다가 버리고 간 활판 인쇄기가 국내 인쇄시설의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일제의 식민미술로부터 벗어나려는 의식으로 민족미술의 이념정립이 당위적 과제로 떠올랐다. 그러나 좌우익의 이념대립과 정치세력의 분쟁으로 사상적 혼란에 휩싸였으며, 사상적인 문제 못지 않게 인쇄시설과 기술의 미비, 극심한 재료난으로 광복 당시 고조된 의욕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했다. 급기야 38선 이남의 미군주둔으로 미국 문화가 거침없이 국내에 유입되어 갈피를 잡기 어려운 시기로 접어들었다. 생산 분야에서는 기반시설이 극히 미약해 대량생산에 기초한 '디자인(Design)'이란 개념 조차 발 붙일 자리가 없었다. 다만 시각디자인 분야에서는 의식개혁과 생산촉진 등을 홍보 계몽하는 포스터, 교과서 등과 같은 출판물의 수요가 증대되어 극히 초보적인 디자인의 역할이 강조되었다.

설상가상으로 그 이후는 한국전쟁을 맞아 모든 생산시설이 파괴되어 어려움은 더해만 갔다. 이 혼란기는 한국전쟁으로 인해 피폐해진 50년대 말까지의 시기와 전쟁의 상처가 어느 정도 아물고 국가산업재건을 위해 국가주도의 미술을 비롯한 문화예술 진흥책이 모색되던 시기들을 포함한다.

전쟁 전후의 그 급박함 속에서도 좌파미술가들은 그들의 행동강령에 나타난대로 출판물을 통해 사회주의 의식을 고취시키는데 심열을 기울였다. 그 결과 많은 좌파미술가들이 장정가로서 활약하였으며 이 때의 장정들은 그 질에 있어서 만큼은 높은 수준을 유지하였다. 그후 60년대 초 경제개발이 촉진되기 시작해 산업미술(디자인)이 일반 대중에게 인식되고 자리잡기 시작하였다. 이때부터는 전문 디자이너들이 대학을 통해 배출되면서 서서히 출판에 디자인의 개념이 도입되기 시작하였다.

이같은 시대배경을 거치며 제작되어진 출판물들을 개화기부터 1960년대까지 앞서 구분한 한장본 스타일과 양장본 스타일로 대별해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다.


3.분야별 장정과 특기사항


1)한장본 스타일


(1)능화판으로 제작한 전통 한장본 장정

합방되기 이전부터 양장본이 일본을 통해 소개되면서부터 한장본 스타일의 장정이 양장본과 혼용되고 있었다. 아니 어떤면에서는 양장본에 대응하여 전통의 맥을 성실히 지켜나갔다고 볼 수 있다. 장지연이 지은 <大韓彊域考>(1903년, 황성신문사 간>, 박문사에서 펴낸 <法學通論>(1905년, 강하부 사립보창학교 간), 이윤희가 지은 <新撰 初等小學>, 장지연이 지은 <大韓新地誌>(1907년, 휘문관 간), 유성준이 지은 <新撰 小博物學>(1907년, 동문관 간), 주정균이 지은 <最新 經濟學>(1908년, 보문사 간), 김진초가 지은 <果樹栽培法>(1909년, 보성사 간), 이각종이 지은 <實利 農方新編>(1909년, 광덕서관 간) 등의 장정은 전부가 치자물을 들인 능화판 무늬에 왼쪽 상단에 제호가 적힌 제첨을 붙여 전형적인 한장본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다만 두드러진 특징이라면 오침안정법(五針安定法)을 취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한결같이 4침안정법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4침안정법을 취하고 있는 이유로는 판형이 작아졌기 때문이다. 전통 한장본의 크기는 대부분 5침안정법을 취할 정도로 크나(57배판 크기 내외) 양장본이 등장하면서 부터는 한장본의 크기도 실용적으로 작아지면서(46배판 이하 크기) 구테여 오침안정법을 취할 필요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이같이 개화기까지 활발히 제작된 한장본 장정이 합방 후에는 제작의 어려움으로 인해 점점 사라지고 편의성을 추구한 개량 한장본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2)개량 한장본 장정

이능화가 지은 <朝鮮女俗考>(1927년, 동양서원/한림서림 간)는 얇은 개량한지에 연활자로 인쇄한 개량 한장본 스타일을 취한 책으로 이같은 책은 간간히 출판되었으며 해방 후 발간된 <꽃다발>(1947년, 박문출판사 간)과 그 맥을 같이한다. 개량된 한장본으로서 특히 주목할 것으로는 가람 이병기의 <嘉藍 時調集>(1939년, 문장사 간)과 <詩集 具常>(1951년, 청구출판사 간)을 들 수 있다. 이병기의 시조집은 처녀시집으로서 300부 한정본으로 정성을 들여 제작하였으며 표지에 사용된 한지가 아주 훌륭하다.

<시집 구상>은 6.25전쟁으로 인해 종이가 없을 때인데도 연청색 색지에 2색도의 석판화로 인쇄를 하였다. 내지는 한지에 연활자로 인쇄하고 외장은 4침으로 고정하여 한장본으로 장정을 꾸몄다. 한장본으로 된 시집으로서 기념비적인 장정으로 손꼽힌다.


2)양장서 스타일


(1)그리드를 이용한 장정


(?)그리드를 이용한 최초의 출판물 <漢城旬報>

박영효가 주동이 되어 발행한, 우리나라 최초로 신연활자로 인쇄한 신문인 <한성순보>(1883, 통리아문박문국 간)는 활자를 고정시키는 가름쇠 즉 그리드(grid)를 활용하고 있다. 일본에서 주조된 활자를 쓴 것으로 봐서 외곽의 겹괘선과 안쪽의 단괘선 또한 일본에서 연활자와 함께 들여온 화형(花形)괘선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드를 사용해 제호와 발행 호수 및 년월일, 발행처를 본문과 구분하고 있다. 이후 각종 출판물들을 살펴보면 이 괘선들이 장식과 문양이 다양하게 보완되어 양장본에 흔히 나타나게 된다.

우리나라 최초의 양장본인 유길준의 <西遊見聞>(1895년, 일본 東京 交詢社 간)을 비롯해 언론인 장지연이 쓴 <接木新法>(1909년, 황성신문사간), <蔬菜栽培全書>(1909년, 황성신문사 간) 그리고 유근이 저술한 <新撰初等歷史>(1910년), 곽한탁이 지은 <簡易 八種簿記>(1911년, 보급서관 간), 죠션예수교쟝로회 발행의 <예수행적공부>(1912년) 杭眉居士가 지은 <漢字用法>(1917년, 조선총독부 간) 등은 전부가 그리드를 상하로 연결한 3단 스타일을 하고 있다.

대부분의 표지가 구태여 3단으로 나뉘어진 스타일을 이루고 있는 것은, 출판물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1)저자 (2)제목 (3)출판사 또는 발행연도를 표지에 구분해 나타내는데 편하기 때문이다.(주11) 전통 한장본에서는 책명이나 권수가 제첨에 나타나고 발행처는 내지 맨 뒷장에 별도 표시되는 점과 3단 그리드로 된 국내 최초의 양장본 <서유견문>이 일본 동경의 교순사에서 인쇄된 것으로 봐서 이 스타일은 일본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돼다 국내에 유입된 스타일로 봐야 할 것이다.

신연활자가 쓰이면서 자주 등장하기 시작한 이러한 스타일은 초기 장식이 많은 화형괘선이 홑으로 단순화하고 장식이 없는 단선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이상춘이 지은 <조선어 문법>(1925년, 송남서관 간), 권덕규가 지은 <조선유기>(1928년, 상문관 간), 황의돈이 지은 <中等朝鮮歷史>(1932년, 홍문원 간), 송헌석이 지은 <漢語獨學>(1935년, 광익서관 간) 등은 모두 단괘선을 사용하고 있다. 이는 또한 해방 후 최현배가 지은 <중등조선말본>(1945년, 정음사 간), 박은식이 지은 <韓國痛史>(1946년, 달성인쇄주식회사), 신채호가 지은 <朝鮮史硏究草>(1946년)로 연결된다.

초기의 장정으로 이렇듯 한장본 스타일과 초기 양장본의 전형적인 스타일인 그리드와 화형 괘선을 이용한 두가지의 스타일이 많이 생산되었음을 알 수 있다.


(遁)목판본 괘선를 이용한 <黃眞伊> <山제비> <산딸기>의 장정

1938년 김용준이 장정한 <황진이>는 목판의 5단 그리드가 쳐진 흰 바탕에 어미(魚尾)와 제호를 둘러친 사각형의 가름칸 그리고 해태상과 밤톨가지(밤톨에만 밤색의 액센트를 더해 강조하였다.)를 얹은 소반을 시각소재로 해서 탁월한 장정을 꾸며냈다. 색채의 조화와 레이아웃의 안정성, 제호의 주목성 등이 뛰어난 걸작이다. 특히 전면 표지와 등 그리고 후면 표지 전체에 걸쳐 목판본에 나타나는 괘선을 그대로 연결해 표지디자인의 연결성을 강조하였다.

해방 후 임학선이 장정한 <산제비>(박세영, 1946년, 별나라사 간)와 <산딸기>(노천명, 1948년, 정음사 간)는 <황진이>와 같은 스타일로서 똑같이 목판의 계선을 이용하여 표지를 디자인하고 있다. <산제비>는 제호와 저자 그리고 출판사명을 두드러지게 표현하고 있으며 나머지 여백에 화초를 그려 바탕의 4단 그리드와 조화를 이루도록 디자인 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산딸기>는 7단 그리드에 산딸기를 붓그림으로 과감히 처리하고 그 위에 제호와 작가명을 검은색으로 표현하고 있다. 근래에도 이와 유사한 스타일의 장정이 자주 응용될 정도로 60여년전에 제작된 <황진이>의 장정은 전형(典型)이 되고 있다.


(2)구상화 사용 스타일


(?)토속적인 맛을 감칠나게 표현한 <감자> <동백꽃> <진달래꽃> 장정들

김동인의 단편소설집 <감자>(1935년, 한성도서주식회사 간)는 우리나라 초기의 자연주의적인 단편소설이 실려 있는 책으로서 그에 걸맞게 장정의 표지 디자인부터가 토속적인 냄새를 물씬 풍긴다. 연한 주홍색 바탕에 레쟈크지로 된 표지는 붓으로 거칠게 손글씨로 표현한 ‘감자’라는 글자와 표지의 가장자리를 두른 문양과 어울려 우리의 멋을 물씬 풍기는 장정으로 손색이 없게 디자인 되었다.

김유정이 지은 단편 21편이 수록된 <동백꽃>(1938년, 세창서관 간)도 구상적인 표지화로서 한국문학사상 최초로 토착적인 유머를 형상화 시킨, 글의 성격에 걸맞는 표지화가 돋보이는 책이다. 황토색 바탕에 두송이 동백꽃. 그 붉은 동백꽃잎과 검은색 잎이 강렬한 조화를 연출하고 있다.

소월이 지은 <진달래꽃>(1951년, 숭문사 간, 재판본)은 당시 수많은 독자들이 애송했던 소월의 서정적 은율을 그대로 표지에 담아 차분하고 토속적인 이미지를 잘 전달하고 있다. 청자의 모습과 한잔의 술을 마실 수 있는 자그마한 표주박 그리고 배경으로 나무 두그루를 배치해 토속적인 일상의 풍경을 아스라히 그려내고 있다. 이 세권은 우리 땅에서 피어난 문학 작품에 가장 잘 어울리는 장정들이다.


(遁)운치 있는 문인화로 표현된 장정들

화가들이 장정에 참여한 경우를 보면 많은 것들이 해방 전후를 불문하고 붓가는데로 그린 문인화풍이 많이 등장한다. 월북 서양화가인 길진섭(吉眞燮:1907~1975)이 표지화를 그린 정지용의 시집 <白鹿潭>(1941년, 문장사 간)은 단연 문인화풍 장정의 백미(白眉)로 손꼽을 만하다. 네그루의 나무 사이로 노니는 붉은 점의 두마리 사슴 그리고 나비 한마리가 등장하는 4각의 판면(版面)은 그대로 하나의 동양화 화폭이다. 이태준의 소설을 碧樓散人이 장정한 <돌다리>(1943년, 박문서관 간)는 터질듯 잘익은 두개의 석류를 운치있게 표현하고 있으며 김말봉의 소설 <찔레꽃>(1957년, 문연사 간)도 유사한 레이아웃으로 판면을 처리하고 있다.

김용준이 짓고 그가 장정한 <近園隨筆>이나 길진섭이 표지화를 그린 <散文>(정지용, 1947년, 동지사 간)도 한폭의 문인화를 보는 듯한 표지화로 장식되어 있다. 또한 글쓰고 그림 그린 다재자능한 작가로 이름난 이주홍(李周洪). 그가 지은 <早春>(1956년, 세기문화사 간)은 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서 여백의 미를 잘 살린 두개의 버들강아지가 잘 어울리는 장정이다. 이외에도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스타일이 바로 이러한 장정들이다. 다른 쟝르와는 달리 시와 수필집에는 이같이 내용과 잘 조화되는 문인화풍의 표지화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여기서는 오늘날의 장정에서는 느낄 수 없는 여유로운 마음과 차분함을 느낄 수 있다.


(?)삽화가 돋보이는 <윤석중 동요집>과 <自由夫人>의 장정

<윤석중 동요집>(1946년, 박문출판사 간)은 장정에 대단한 열성을 기울인 책이다. 당대 최고를 자랑하는 정현웅이 장정을 담당하였고 겉그림은 조병덕(趙炳悳) 그리고 속그림은 김의환(金義煥)이 그렸다. 하나의 동요집 장정에 여러명이 참여한 예를 보여 준다. 장정의 역할을 독립된 영역으로 구분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오늘날에도 꾸준히 불려지는 주옥같은 동요들, ‘맴맴’‘낮에 나온 반달’’바람’’봄나들이’’그림자’’나란히 나란히’등의 동요에, 내용에 맞게 충실히 전개된 삽화가 일품이다.

정비석의 <자유부인>(1954년, 정음사 간)은 새로운 성문화를 다뤄 당시의 사회에 큰 충격을 불러 일으킨 소설이다. 이 연재소설은 1954년 1월1일부터 그해 8월 6일까지 215회에 걸쳐 <서울신문>에 연재되어 엄청난 인기를 끌어, 신문판매 부수가 12,000부 이상이나 올라가는 기록을 달성하였다. 당시 삽화를 담당했던 김영주의 삽화가 인기를 끌며 독자 확보에 크게 기여한 면도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당시로는 극히 드물게 연재 완료 전인 54년 8월 18일 '정음사'에서 단행본 상하권 332쪽으로 간행되기도 하였다. 표지는 신문에 연재했던 삽화가 김영주의 일러스트를 사용하여 깔끔하게 디자인하였다. 제호의 레터링과 위치 그리고 표지화의 색조와 내용(침대에 걸쳐 앉아 전화를 거는 부인의 모습) 등이 잘 어울리는 수작이다.


(?)판화 기법으로 된 장정들

동경학생예술좌에서 발행한 <放歌>(제1집 문예부, 1934년)는 올굵은 삼베로 배접한 빈 표지지만 그 뒷부분 표2와 3에는 제호와 년도가 힘있는 글씨로 석판화되어 있다. 사실 예전의 표지화는 300내지 500부를 찍으면 다시 쓸 수 없는 석판화로 인쇄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중에도 판화가 본격적으로 장정에 사용된 것은 이인성의 판화가 붙어있는 임홍은이 지은 <물새발자옥>(1939년, 교문사 간)이다. 이 책은 이인성의 판화를, 표지에 인쇄한 것이 아니고 독립적인 단색목판화를 별도로 찍어 표지에 붙여 만든 것으로서 우리나라 근대판화의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기까지 하다.

이수형이 전체 장정을 담당하고 최은석이 판화를, 그리고 내표지의 원색화를 이대향이 담당한 <나사는곳>(오장환, 1947년, 헌문사 간)은 판화를 장정화로 사용한 몇 안되는 책중에 하나다. 또한 같은해 정현웅이 장정을 한 <불>(안회남, 1947년, 을유문화사 간)도 독특한 레이아웃과 여백의 미를 잘 살린 소설이다. 정현웅의 능력이 잘 발휘된 장정으로서 판화를 상단에 배치하고 붉은 색의 사각형안에 제호 ‘불’자를 아랫부분에 배치한 것이 다른 장정과는 유별나다. 이외 표지화가 아닌 내지화에 돋보이는 판화가 사용된 책은 <花蛇集>(서정주, 1948년, 선문사 간)으로서, 또아리를 틀고 빠알간 사과를 머금은 화사(花蛇)그림의 판화가 인상깊다.

만해 한용운의 대표시 88편을 수록한 시집 <님의 沈默>(1950년, 한성도서 간)은 해방 후 나온 책중에서 그 힘있는 장정이 두드러지는 책이다. 먹색과 짙은 분홍색 그리고 흰색의 3색도의 조화로 인해 단조로우면서도 판화로 표현한 것 같은 강렬함이 돋보인다. 제호의 글자체도 획이 많고 크기가 큰편이지만 굵기의 조절로 바탕의 모란과 잘 어울리고 있다.

이러한 판화기법으로 된 장정은 오늘날에도 꾸준히 시도되고 있으며 근자(近者)에 와서는 오윤의 판화가 84년 풀빛출판사의 ‘판화시선’, 동광출판사의 김지하 담시모음집 <五賊>을 비롯하여 창작사, 실천문학사, 청사 같은 출판사들이 판화 장정기법을 적극 도입하였고 이철수의 판화가 조정래의 대하소설 <太白山脈>에 사용되어 그 맥을 잇고 있다.(주12)


(3)장식문양 및 추상화를 사용한 장정


(?)당초문, 능화문, 연화문 등을 사용한 장정

미국인 밀의두(密義斗)가 지은 <텬로지남>(1918년)은 제목의 글씨체를 대각선으로 표현한 것과 당초문을 적홍색 바탕에 과감하게 처리한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당초문을 바탕에 문양으로 사용한 장정들이 이후에도 간혹 발견된다. 예를들면 1946년 건설출판사에서 발간된 <정지용시집>이나 똑같은 스타일의 권한이 지은 <凍結> 등이다. 또한 같은 해에 출간된 이태준이 지은 <尙虛 文學讀本>(1946년, 백양사 간)도 전체가 능화문과 연꽃, 와당문양으로 디자인된 전형적인 문양사용 스타일 장정이다. 이와 유사한 스타일로 된 표지가 많이 나타나는데 그중 두드러진 것으로는 혜경궁홍씨가 지은 <限中錄>(이병주 역, 1947년, 백양당 간)은 연청색 바탕에 조금 진한 청색의 문양을 깔고 왼쪽 상단에 세로로 목판본에서 볼 수 있는 괘선을 두른 제호를 배치하여 전통적인 한장본의 느낌이 드는 장정으로 변화시켰다. 또한 민병도가 지은 <朝鮮歷代女流文集>(1950년, 을유문화사 간)은 바탕에 학이 등장하는 문양을 전체로 깔아 디자인 하고 있다.


(遁)초호화 양장본 <百八煩惱>와 <빛나는 地域>의 장정

최남선이 지은 <백팔번뇌>(1926년, 동광사 간)는 현존하는 양장본중에서 단연 최고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장정에 심열을 기울인 책이다. 당대 최고의 동양화가인 노수현이 그린 포도열매와 잎을 표지문양으로 한 총 154쪽으로 된 이 책에는 육당의 시조 108수를 수록하고 있다. 표지가 이중 배접으로 좌우 두면으로 나뉘어 있으며(크로스가 적색과 먹색 두 종류를 사용) 그 위에 제목은 금박과 문양은 백박으로 인쇄돼 있는 초호화 양장본이다.

특히 본문 내용의 편집디자인도 당시로는 파격적인 레이아웃을 취하고 있다. 괘선을 모두 붉은색으로 처리하고 있으며 외부여백을 일정하게 유지하며 둘러친 선이 시 한수한수를 짜임새있게 유도하고 있다. 또한 판면 전면(全面)을 상하로 2등분하여 윗부분에 시를 배치하고 아랫부분에는 그 시의 단어나 어절에 대한 해설을 곁들여 기존의 시집에서는 볼 수 없었던 독자와 쉽게 커뮤니케이션 하고자 하는 편집디자인의 운영을 시도하고 있다.

모윤숙의 처녀시집인 <빛나는 지역>도 당시로는 보기드문 초호화 장정으로 제작되었다. 진홍빛 크로스 바탕에 먹박의 문양(상단에는 우주 천체를 상징하는 둥근 반원형에 별과 구름 문양으로 처리, 하단에는 수평으로 파도 치는 바다를 처리)과 세로로 중앙에 금박으로 제호를 처리하였다.


(4)문자만을 사용한 타이포그리피컬한 장정


(?)개화기 신소설 <血의淚> <銀世界> <自由鍾>의 장정

'신소설'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발생하고 성장한 이야기 문학의 시대적 명칭이다. 또는 시대적 배경에 따라 '개화기 소설'이라고도 한다.(주13) 디자인 면에서 이 소설들의 가치는 신소설답게 그 표지 디자인이 독특하고 다양하다. 대표적인 신소설로는 이인직의 <혈의누>와 <은세계>(1908년, 동문사 간), 이해조의 <자유종>, 구연학의 <설중매> 등이 있다.

이인직의 <혈의누>는 모든 문자를 대각선으로 배치한 것이 독특하며, <은세계>의 표지디자인은 '銀'자를 반복해 표지 전면을 덮는 대형의 '銀'자를 만든 타이포그래피컬한 운용을 보여주고 있어 독특하다. 마찬가지로 이해조가 지은 <자유종>도 이에 못지 않은 운용을 보여주고 있는데, 종을 가운데 크게 배치하고 그 종을 거는 쇠줄을 외곽의 장식띠로 해, 종의 빈 공간에 표지의 모든 글자를 그림에 맞춰 레이아웃했다. 그림 속의 글자는 붉은색으로 표현해 눈에 띄도록 배려한 점이 돋보인다.

지금으로부터 80년 전에 시도된 표지디자인이라 할 때, 당시의 여러가지 미비한 상황을 감안하면 획기적이고 훌륭한 타이포그래피적인 운용이라고 평가 할 수 있다. 개화기 신소설의 특징은 이같이 책마다 개성있는 표지로 디자인해 초창기 시각 디자인물이 별로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뛰어난 면모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遁)<社會的色慾論> <소설가 구보씨의 一日> <왕부의 낙조, 여인, 배따라기>의 장정

헤칼(독일 산부인과 교수)이 지은 <사회적색욕론>(晧堂延星 역, 1924년, 태화서관 간)도 1924년에 발행된 책으로는 드물게 구상적인 형태의 표지화를 사용하지 않고 전체를 레터링된 글씨로만 표지디자인을 하고 있는 독특한 장정의 책이다. 지금보더라도 장정가가 시대를 앞서가는 안목을 가진 탁월한 감각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다. 박태원이 지은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과 김동인의 단편집 <왕부의 낙조, 여인, 배따라기(1941년, 매일신보사 간)>의 장정도 당시로는 독특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검은색 바탕에 책의 제호만으로 표지디자인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정적인 당시의 여타 표지와는 달리 과감한 색채와 선으로 칸을 나눈 부분에 약간의 문양을 곁들임과 동시에 문자를 시각소재로 사용한 전위적인 표지라 할 수 있다. 그것도 글자를 레터링한 것이 아니라 붓으로 거침없이 표현한 것이 특색이다.

또한 이용악이 지은 <오랑캐꽃>(1947년, 아문각 간)의 표지화는 글자만을 가지고도 훌륭한 장정을 디자인 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표지의 앞면과 등 그리고 뒷면에 걸쳐 전체를 하나로 연결하는 감각이 특별하다.


3)기타 몇가지 특기사항


(1)특색있는 <少年> <靑春> <三千里> <新女性> 잡지 표지

최남선이 주간을 맡았던 우리나라 최초의 소년잡지인 <소년>(1908년, 신문관 간)지는 깔끔한 표지디자인이 돋보인 잡지이다. 소년이라는 제호를 둘러싼 녹색의 월계관과 아랫부분의 세로로 된 목차가 아주 훌륭하다. ’少年’이란 제호 또한 가히 명필이다. 그리고 제호 양쪽 표지의 모든 문자는 검정색으로 되어 있으며 외곽의 괘선은 적색으로 인쇄하여 전체가 3색으로 조화롭게 인쇄되었다. 우리나라 초창기의 잡지 표지디자인 치고는 군더더기 없는 담백한 디자인의 정수(精秀)를 보여주고 있다.

1914년 10월에 창간된 <청춘>은 <소년>지의 후신으로 창간된 잡지로서 창간호는 당시로는 파격적인 300페이지를 기록하였으며 이광수의 단편소설을 게재함으로서 우리나라 최초로 근대문학을 발표 육성하였다. 디자인면으로 봤을 때 기억해 둘만한 점으로는 우리나라 최초로 고희동(高羲東)의 서양화를 표지화에 사용하였다는 점이다. 표지디자인을 보면 색채가 아주 화려하고 선명하다. 청춘이라는 제호는 검은 정사각형안에 흰색 글씨로 나타내어 눈에 띄게 표현하였으며 망또를 한쪽으로 걸친 젊은이가 호랑이와 함께 어울리는 아주 호탕한 그림으로 장식되어 있다.

이외에 특히 기억할 만한 잡지로는 파인 김동환이 발간한 <삼천리> 창간호(1929년 7월, 삼천리사 간)와 1930년대에 발간된 <신여성>의 표지를 들 수 있다. 이 표지화는 다영(夕影)이 그린 여름날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인이 버드나무 아래 풀밭에 태극선을 들고 있는 그림으로 구성되어 있다. 당시 시대상황을 반영하듯 태극선, 한복, 버드나무를 통해 발행인의 저항적 의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다. 한편 <신여성>의 표지는 이와는 반대로 아주 모던한 스타일로 도안사가 물감으로 제작한 표지를 실은 독특한 잡지이다. 그 중 1931년 12월호와 1933년 6월호 같은 경우는 오늘날의 감각에도 뒤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탁월하다.(주14)


(2)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독특한 딱지본 장정

'딱지본'은 옛 활자본의 속칭 국문 소설류를 신식 활판인쇄기로 찍어 문고본 성격으로 시리즈로 발간한 것을 일컫는데, 대개 그 책들의 표지가 아이들 놀이에 쓰이는 딱지처럼 울긋불긋하게 인쇄되어 있는 데서 이름이 유래되었다. 소설의 내용은 중국 고전소설에서부터 우리 고대소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일반인이 쉽게 보도록 순 국문으로 했으며, 가격이 싸고 페이지가 얇았다. 발행시기는 한말부터 시작해 가깝게는 70년대 말까지 발행되었다. 긴 역사를 가진 값싼 책으로서 표지의 일러스트레이션이 우리의 민화같이 거침이 없고 자유스럽게 표현된 아주 독특한 책이다. 다만 간간히 중국의 전래 소설이나 무협지를 내용으로한 책 표지에서는 중국의 형상(인물이나 복식, 건축물 또는 구름의 문양 등)들을 사용하고 있음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시대별 변천에 다른 소재, 그림의 형태, 색채 등을 통해 단시의 실상을 유추해 볼 수 있는 장점도 발견된다.

즉 표지의 일러스트레이션을 살펴보면 오래된 것일수록 신중을 기한 흔적이 엿보이며, 후기로 넘어올수록 무명(無名)의 화공(畵工)이 대충 그렸다. 활자체를 살펴봐도 오래된 것은 활자에 힘이 있고 인쇄가 선명한 반면, 후기로 올수록 활자가 가늘어지고 종이 지질도 떨어져 인쇄 상태가 조악(粗惡)해진다. 장정 또한 광복 전과 후를 비교하면, 광복 전의 것이 훨씬 정성스럽게 제작되었으며 표지화의 그림도 옛것이 월등 섬세함을 엿볼 수 있다. 딱지본은 우리나라 초창기의 '일러스트레이션으로 된 표지화'의 독특한 면모를 살필 수 있는 소중한 자료로 평가할 수 있다.(주15)


3)<十錢叢書> <六錢小說> 및 기타 문고본의 장정

한편 문양을 사용한 장정중에서 문고본이 주목되는데, 그중 몇가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십전총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교양 문고본으로서 1909년 2월 12일 서울 신문관에서 기획·발행했다. 이는 그 체제가 소형(B6판)이고 값이 싸서(10전) 이름을 '십전총서'로 붙였다. 첫번째 책으로 54면의 <걸늬버 유람긔>를 발행했고, 두번째로 <산수격몽요결>을 발행하고는 중단되었다.

이 십전총서에 이어 다음으로 나온 '육전소설'은 1913년부터 동일하게 신문관에서 발행된 우리나라 두번째의 문고본이다. 판형은 B6판의 소형이고, 값이 싸서(6전) 부담 없이 휴대용으로 볼 수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최초의 문고본인 십전총서의 발행서적이 2종에 지나지 못한 데 비해 '육전소설'은 근 10여 종의 책을 발간했으므로 최초의 본격적인 문고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육전소설(六錢小說)'의 표지를 보면, 당초문으로 표지 전면을 대부분 장식하고, 상단 부분에 제목을 고딕체로 넣었으며 발행소를 중앙의 한가운데 삽입해 넣었다. 넝쿨 모양의 당초문 중간 중간에 붉은색으로 된 6개의 꽃잎을 장식해 양식적이고도 화려한 느낌이 들도록 디자인했다. 문고본의 특징대로 이후 발행된 소설은 같은 스타일로 반복해 제목만 바꿔 표지를 디자인했다. 미술공예운동을 주도한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가 켈름스코트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제작한 아름다운 사가판(私家板)에 등장하는 패턴과 유사함을 엿볼 수 있는 이러한 패턴은 당시 국내의 모든 디자인에 폭넓게 활용되고 있었다. 다만 섬세하지 않으나 대담하게 사용한 점이 특징이다.

박문문고 및 학문사의 문고본도 주목할 만하다. 박문문고는 잘익은 포도를 바라 보고 서있는 사슴을 형상화하여 가장자리 테두리를 장식하고 있으며 학문사는 잘 여문 벼이삭을 소재로 해서 장식하고 있다. 이러한 문고본은 해방 후 1947년 을유문화사에서 발행한 문고본으로 이어진다. 을유문화사의 문고본의 장정은 가장자리를 당초문을 변형시킨 문양으로 두르고 상하로 제목을 위치했으며 중앙에는 둥근형의 화초문양을 배치하였다.(주16)


4)대표적 장정인


(1)국내 장정에 영향을 끼친 고희동(高羲東:1886~1965)

고희동은 당대의 대가로 알려진 안중식과 조석진의 문하에 드나들기 시작하면서 화가로 출발하였다. 1909년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미술학교 양화과를 졸업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가 되었으며 귀국하자 한국인 서화가들의 최초의 모임인 서화협회를 결성하였다. 1921년 중앙고등보통학교 강당에서 제1회 서화협회전이 열렸는데, 이것이 대중을 상대로 한 최초의 근대적인 전시회였다. 회원전과 더불어 계몽사업으로 한국 최초의 미술지인 <서화협회보>를 창간하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로서 새로운 조형방법을 후진에게 가르친 미술교육자로서, 그리고 화단을 형성하고 이끌어나간 미술행정가로서 높이 평가 받을 만하다. 그는 <청춘>지의 창간호 표지를 그렸으며 휘문고보 미술교사 재직시는 이상이나 출판미술가로서 명성을 떨쳤던 이승만을 비롯해서 서양화가로서 장정 및 삽화분야에 적극 참여한 구본웅 등을 배출하여 국내 장정의 수준을 높인 공로자 역할을 하였다.


(2)<朝鮮과 建築>을 장정한 모더니스트 이상(李箱:1910~1937)(주17)

이상은 보성학교(당시 미술교사 고희동) 재학 당시 교내미술전람회에서 유화 '풍경'으로 우등상을 수상한 이래 경성공업고등학교 건축과를 졸업하고 조선총독부에 취직하여 직장 근무중 시와 소설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일본어로 된 총독부 건축과 기관지인 <조선과 건축> 표지 도안 현상모집에서 1등과 3등으로 당선한 이후 4석으로 또 한번 입선 그리고 선전에 자화상이 입선할 정도로 그림과 디자인에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디자인한 1931년 <조선과 건축>의 표지디자인 및 제호디자인은 그의 모더니즘적인 시각을 잘 반영하는 작품으로서 당시 파격적인 디자인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누구도 생각치 못했던 ‘5’라는 숫자 하나만을 가지고 표지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제호디자인도 제호의 중심을 기준으로 상단부분과 하단 부분을 둘로 나누어 변화를 줌으로써 독특한 율동감과 입체감을 부여하고 있다. 그는 후기모더니즘에서 추구하는 바와 마찬가지의 작업을 수행하였는 바 문자를 기호로서 구조적으로 분석하고 배치하여 실험적인 타이포그라피의 관점에서 접근하곤 하였다. 유일하게 남아있는 그의 이 <조선과 건축>의 장정은 이땅에 모더니즘이 존재함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3)삽화계 삼천왕의 한사람 이승만(李承萬:1903~1975)

이승만은 삽화가로서 호는 행인(杏仁)이다. 서울에서 출생하였으며 교동보통학교를 거쳐 휘문고등보통학교 재학중 고희동(高羲東)으로부터 그림지도를 받았다. 졸업 후 서울 종로 기독교청년회 내 그의 고려화회 소속 장발(張勃), 안석주(安碩柱), 구본웅(具本雄) 등과 같은 화우 문하생으로 수업을 하였으며, 일본 가와바타화학교(川端畵學校)에 유학한 후 돌아와 조선미술전람회 서양화부 제4회부터 연속 4차례나 특선하였다. 신극단 토월회에 가입하여 무대장치를 전담하다가 1928년 매일신보 학예부 기자로 신문 연재소설 삽화를 전담함으로써 <동아일보>의 이상범(李象範), <중앙일보>의 노수현(盧壽鉉)과 함께 광복 전 삽화계 3천왕(三天王)으로 알려질 만큼 신문 삽화의 상징적 존재가 되었다. 박종화 작 역사소설 <금산의 피>(1935) 삽화를 그리게 된 것을 계기로 하여 광복 전후 박종화와 명콤비를 이루어 <조선일보> 연재소설 <임진왜란>(1954년~1957년), <세종대왕>(1969~1975) 등 풍속화풍의 삽화를 도맡아 그렸다. 그는 후에 화가의 길로 매진한 이상범, 노수현과는 달리 신문 뿐만아니라 단행본의 삽화와 장정에도 적극 참여하였다. 만년에는 삽화계 원로가 되어 삽화가협회 회장에 추대되었다.


(4)좌파미술운동가와 김용준(金瑢俊:1904~1967)

출판미술에 대한 운동은 좌파 미술운동에서 유독 두드러졌다. '25년에 창립되어 30년대에 들어 새롭게 방향을 전환한 조선 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KAFP)산하 미술부에 의해 판화, 만화, 포스터, 삽화 등의 출판미술과 연극을 중심으로 한 무대미술 활동이 분야별로 나뉘어 활발히 전개되었다.

특히 좌파미술운동가들이 강조한 사회 개몽을 위해 인쇄매체의 중요성을 강조해 이후 6.25가 발발하면서 극치를 이루었다. 이들에 의한 장정은 그 수가 많음에 그치지 않고 수준에 있어서도 여타의 장정들과는 달리 개성있고 혁신적인 장정이 많음이 또다른 특징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중의 한사람인 김용준은 화가, 미술평론가 또는 한국미술사학자로서 호는 근원(近園)이다. 서울에서 중학교에 다닐 때에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는 등 재능을 나타내었고, 동경미술학교 서양화과에 유학하여 1931년에 오지호(吳之湖)와 동기생으로 졸업하였다. 그러나 그 뒤에는 고희동이 결성한 서화협회전에만 몇번 참가했을 뿐 양화가로서의 작품활동을 지속하지 않았고, 1938년 무렵부터는 전통적인 수묵화에 손대기 시작하였으나 뚜렷한 면모를 나타내지 못했다.

반면 신문, 잡지에 미술평과 미술관계 시론 등을 기고하면서 평론가 또는 잡지나 단행본의 삽화가로서 활약하였다. 이때 표지화와 삽화를 많이 그린 김환기와 교유하였으며 수필가 이태준과 각별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이태준이 쓴 책들은 거개가 김용준이 장정을 할 정도로 친교를 나눴다. 문학에 대한 것은 이태준이 김용준에게, 미술에 대한 것은 김용준이 이태준에게 특히 골동품에 관한 안목은 김용준이 이태준에게 지도함으로써 이둘은 문학사와 미술사에 크게 부각되었다. 월북 전의 저서로 <近園隨筆>(1948)과 <朝鮮美術大要>(1949>가 있다.

김용준은 광복 후 6.25가 일어나자 공산체제에 영합하여 좌익색을 드러내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을 접수하여 학장이 되는 등 몇달간 맹활약하였고, 서로 가깝게 교분한 탓으로 이 둘은 9.28 서울 수복 때 동시에 월북하게 된다.


(5)최고 수준의 장정가로 이름을 날린 정현웅(鄭玄雄:1910~1976)

특히 좌파미술가들 중에서도 정현웅의 두드러진 활약은 그를 당대 최고의 장정가로 만들었다. <무풍지대> <청색마> <불> <초생달> <황제> <천변풍경> 등 주옥같은 장정들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정현웅은 서울 출신으로서 독학으로 그림을 공부, 1923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면서 화단에 진출하였고, 광복 후 서울에서 좌익 조선미술동맹 간부로 활약하였다. 49년 전향을 선언하였으나 6.25 후에 남조선미술동맹에 들어가 적극 활동하다가 월북하였다.

일제강점 아래에서 그는 특정 기법에 치우치지 않는 사실주의 화풍의 인물, 풍경화를 주로 그렸는데, '대합실 한구석' '검은 외투'와 같은 작품을 통하여 당시의 암울한 민족현실을 상징적으로 담아내려 애썼다. 그 뒤 1950년 9월에 월북하여 국립미술제작소 회화부장을 지냈고, 1951년 7월 부터 1957년 2월까지 물질문화유물보존위원회의 제작부장을 지내며 전후에 시도된 고화모사사업(1952년 9월~1963년)에 수차 참여하여 안악 제1,2,3호 고분과 강서 고분 등의 벽화를 모사하였다.

1955년 <조선미술이야기>를 집필하였고, 후일 <력사화와 복식문제>, <아동미술을 더욱 발전시키자>(1959년) 등의 글을 발표하였다. 1957년 조선미술가동맹 출판화분과위원장에 선임되었으며, 1966년부터는 조선미술가동맹에 소속된 현역미술가로 창작활동에 전념하였다.


4)주옥같은 장정들을 남긴 김환기(金煥基:1913~1974)

김환기의 표지화는 1948년부터 1972년에 걸쳐 주로 제작되었다. 김환기는 해방 후 한국의 고유미를 찾는데 심열을 기울인 화가다. 이때 그의 화풍은 추상에 대한 관심은 있었으나 표출되지 않고 구상적 경향으로 바뀌기 시작하였다. 그의 그림에서 해변의 여인, 산월(山月), 꽃, 항아리, 새, 기타 소품들(파이프, 펜, 안경, 책 등)이 주요 모티브를 이루었다. 당시 그는 문인들과 교우하면서 그들의 청탁에 의해 장정에 수없이 관여하게 되는데, 이때 주로 등장하는 것이 앞서 밝힌 것과 같은 소재들이었다. 이러한 소재들은 구상적이면서도 추상화의 요소가 가미된 독특한 형상들이다. 실제 그가 제작한 표지화들을 보게되면 구상과 추상을 넘나든 것들이 많이 눈에 띈다. 김환기의 수많은 작품중에서 대표작으로 <巴里>(1952년, 어문각 간), <鶴>(1957년, 중앙문화사 간), <쑥꽃私語錄>(1959년, 범조사 간), <바라춤>(1959년, 통문관 간)을 들 수 있는데 이에서 증명되는 사실이다. 이 작품들은 한작품 한작품이 예술성 넘치는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장정에 대한 사랑이 넘쳐나고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김환기는 <현대문학> 창간호(1955년, 현대문학사 간)에 기고한 ‘표지화여담(表紙畵餘談)’에서 표지화에 대한 이같은 그의 애착과 사랑을 잘 밝히고 있다.

“표지 장정은 더욱 어렵다. 책의 얼굴이 되기 때문에 책임감이 더해진다. 속몸이 아무리 예뻐도 어색한 옷을 입혔다간 우스운 꼴이 되고 말 것이 아니가.(중략) 또 우리들은 특히 월간물 표지인쇄에 있어선 치밀한 교정을 보지 않는 것 같다. 치밀한 교정과 인쇄력을 동원하면 좋든 그르든 원화의 실감이 날텐데 그러지 못하다. 어쨋든 제작이 순조롭고 본격적인 제작을 늘하고 있을 때 장정화도 잘되며 커트 같은 것도 재미나게 되는 것 같다. 그러니 일(제작)을 지속하는 생활이 아니면 조그만 삽화도 좋은 것이 나오지 않을 수 없는 것 같다.”(주18) 그는 질과 양면에서 단연코 우리나라 장정의 수준을 한단계 올려 논 선구자임에 틀림없다.


맺는글


개화기 이후 1960년대까지 발행된 대표적 출판물에 대하여 이상과 같은 스타일에 따른 분류를 통해 기존 출판물을 분석해 보았다. 그 결과 연구 검토 끝에 나타난 특징을 몇가지로 분류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표지화 작업시 원화의 크기는 지금과 달리 인쇄기술의 한계로 인해 책의 판면과 같은 크기로 작업하였음을 알 수 있다. 수없이 표지화를 그린 김환기는“표지화에 있어 한가지 어려운 것이 있다. 책의 크기에 똑같은 원형대로 그리는 일이다. 치수를 재서 그 속에다 그리는 것도 귀찮을 뿐더러 죄그만 바닥에 모필을 쓰고 채색을 하자니 항상 오밀조밀해지고 만다. 적어도 갑절 이상의 바닥에 활달한 생각으로 그리면 그것을 축소·인쇄한대도 효과가 더 좋을 것이 아닌가 싶다.”라고 ‘표지화여담’에서 이같은 점을 밝히고 있다.

둘째, 많은 표지들이 앞뒤 표지를 하나의 화면으로 연결해서 입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같은 예는 무수히 많이 볼 수 있는데 <찔레꽃>, <오랑캐꽃>, <불>, <학>, <조춘>, <생활의 윤리>, <황진이>, <돌다리> <학> <바라춤> 등 뛰어나게 아름다운 장정들 대부분이 펼침페이지 장정을 구사하고 있다. 이는 화가들이 장정에 참여하면서 입체적인 시각을 가지고 판면을 좀더 큰 화폭으로 구사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셋째, 장정에 들어있는 시각요소들(표지화, 컷, 스케치, 제호글자)을 비롯해 활자, 인쇄상태, 지질 등에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 잘 드러나 있다. 해방전에는 저항적인 시각소재가 많이 등장하고 있으며 해방 후 6.25 당시에는 색채조차도 어둡고 인쇄와 지질 등이 최악일 정도로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 또한 근래에 가까와 오면서 장정도 복잡함에서 단순함으로 더나아가 간편함을 점점 추구하였다.

넷째, 장정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첨부된 ‘도표’에서 나타난 바와 마찬가지로 장정가에 대해 기대치보다 많은 책에서 익명성(匿名性)이 아니라 기명성(記名性)을 취하고 있으며 그것도 상당히 좋은 위치에 눈에 띄도록 기명을 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더나아가 제자(題字) 그리고 교정에 대한 것까지 관심을 기울였다는 점이다. 예를들어 심훈의 <상록수>를 보면 표지화:이상범, 제자:손재성, 내지화:이여성 심지어 한글교정:이윤재라고 까지 밝히고 있다. 또한 앞서서도 밝혔듯이 1946년 발간한 <윤석중 동요집>도 보게되면 장정 정현웅, 겉그림 조병덕, 속그림 김의환으로 각각이 수행한 작업에 대해 충분한 예우를 갖추어 주었다. 디자인의 실명화를 오래전부터 실천했음을 알 수 있다.

다섯째, 필자가 판단하기에 심미성, 독창성, 기능성에서 뛰어난 대표적 장정으로 10권을 꼽으라면 (1)<백팔번뇌> (2)<감자> (3)<황진이> (4)<학> (5)<조춘> (6)<님의 침묵> (7)<시집 구상> (8)<불> (9)<귀촉도> (10)<오랑캐꽃> 등을 들 수 있다. 잡지의 표지화는 그야말로 한장의 표지화에 그치지만, 이같은 대표적인 창작집의 경우는 단순히 표지화 하나로 끝나지 않고 책표면 전체를 꾸미는 본격적인 장정으로 시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인쇄기술이 조악한 시대의 상황을 감안할 때 이처럼 수준높은 장정들이 제작될 수 있었다는 것은 역시 뛰어난 작가의 안목과 구성에서 가능했던 것이 분명하다. 장정에 사용된 표지화와 삽화를 보면 내용을 시각적으로 추출해 내는 능력이 탁월했음을 알 수 있다.

여섯째, 60년대까지 활약한 장정가 중에서 대표적인 작가로는 약 10여명을 들 수 있다. (1)고희동(高羲東) (2)이승만(李承萬) (3)구본웅(具本雄) (4)이상범(李象範) (5)김용준(金瑢俊) (6)길진섭(吉鎭燮) (7)정현웅(鄭玄雄) (8)김환기(金煥基) (9)이주홍(李周洪) (10)조병덕(趙炳悳) 등이다. 이들 대부분은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일본에서 서양화를 수학하고 온 작가들이거나 또는 그들에게서 국내에서 수학한 제자들이 대부분이다.(주19) 그럼에도 장정을 포함한 출판미술에 있어서 만은 분명히 한국적인 맥을 잃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특히 해방전에는 한국적인 소재사용 즉 한반도, 태극선, 호랑이, 대나무, 난, 매화, 도자기, 한복 등을 등장시켜 민족정신을 고취시켰으며 이같은 한국적인 소재 사용은 그 이후에도 계속되어 독특한 장정의 시각소재로 꾸준히 사용되었다.

일곱번째, 해방전과 후에 활약한 좌파미술가들의 다양하고 뛰어난 장정들에 대해 그 가치를 새롭게 인식해야 할 것이라는 점이다. 질와 양에 있어서 누구보다도 활발한 활동을 벌였음이 본 연구를 통해 나타났다. 장정이라는 것이 내용을 표출하는 시각적 결과물이라 할 때, 내용을 배제할 순 없지만 순수하게 디자인적인 측면에서의 연구 고찰이 좀더 치밀하게 이루어져 그들의 활동상이 자세히 밝혀질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

여덟번째, 각각 동경예술대학 도안과와 동경도안전문학교를 졸업한 이순석(석공예가, 전 서울대 교수)과 한홍택(산업미술가, 전 홍익대 교수)은 그들의 전공을 살려 활발한 장정 작업 활동을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장정작품이 별로 남아있지 않다는 것의 흥미로운 사실이다. 이순석 같은 경우는 졸업작품을 십여장의 표지디자인 작품으로 남기고 있었음에도 이후 장정에는 별반 관여하지 않았다. 한홍택도 해방후 몇편의 책 표지가 있을 뿐 전혀 관심밖의 일로 여겼다. 이 두 작가의 작품 경향으로 봤을 때,(이순석의 다분히 일본풍의 졸업작품 표지디자인과 한홍택의 서구적인 색채, 형태감각 등) 일본이나 또는 디자인 경향이 수입된 서구의 스타일이 여과되지 않은 채 표지에 등장할 수도 있었으나 우리의 시각소재를 활용한 앞서 밝힌 바와 같은 작가들의 활발한 활동으로 하나의 커다란 한국적 장정의 아이덴티티를 형성할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우리의 출판문화속에 장정이 차지하는 비중은 당대의 최고 미술가들이 참여한 결과로 인하여 기존의 우리들 생각보다 의외로 분명히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일본으로부터 전래된 출판제작방식을 오랜 기간동안 답습한 것들도 있지만 한편으론 이를 소화해 우리만의 건강한 한국적 장정-소재면에서나 형식면에서-을 견실하게 유지해 왔음이 드러났다.

개화기-일제강점기-해방혼란기-6.25 동족상잔기-미군주둔기 등 폭풍노도(暴風怒濤)와 같은 격랑의 세월속에서도 상대적으로 더욱 단련된 모습으로 성장해 온 것 또한 느낄 수 있다. 어쩌면 다른 분야보다도 덜 세속화되고 정체성이 흔들리지도 않았으며, 우리 것을 지키는데 급급한 것이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 예술가의 기본 속성에 맞게 시대환경에 창의적으로 대응해 왔다고 평가 할 수 있다. 이것이 흩어져 있던 자료를 모아 검토한 최종 결론인 것이다.

한가지 첨언할 것은 대표적인 출판물에 있어 장정가가 제대로 파악 않된 것들은 본인이 파악한 일부분의 자료를 토대로 추후 관심있는 분들이 계속 보완한다면 우리나라 장정의 역사가 더욱 확연해 질 것으로 믿는다.(주20)


<주>

1)본 연구논문은 1997년 출판문화학회지 제5호에 개재된 논문으로서, 필자가 한국애서가클럽의 기관지 비브리오필리 1996년 가을호(제7호)에 발표했던 '문학도서 장정의 변화와 특성 그리고 의의'(68~88면)라는 제목의 내용을 전체적으로 수정·보완해 게재한 것임을 밝힌다.

2)한장본(漢裝本)이라는 용어는 서지학자였던 고(故) 안춘근 선생이 <옛책>(대원사간, 1991, 29면)에서 고서의 분류체계시사용한 용어이다. 동양 특히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 일본 등지에서 사용했던 제본방식을 통칭하는 의미로 사용했으나 필자는 이중에서도 대표적인 선장본 스타일을 양장본(洋裝本)에 대응하는 의미로 사용하였음.

3)그러나 한국애서가클럽이나 한국고서연구회, 고서협회 등에서는 책에 관한 미술적인 요소에 대해 끊임없이 관심을 기울여 왔다. 특히 한국애서가클럽에서는‘조선의 목판화전’(1992년 8월)이라든지‘책과 미술’에 대한 심포지움(1995년 12월) 등을 통해 그 인식의 폭을 확대시켜 왔다. 그러나 그동안 연구결과도 인쇄, 활자, 지질, 삽화(삽도) 등 국지적인 면에 그쳤으며 이를 종합한 장정에 대한 연구로는 본격적으로 시도하지 못했다.

4)장정의 범위와 구성요소:장정의 범위를 책의 형태적 구성요소를 디자인하는 작업 전체를 말한다고 정리한다면 면 이 작업은 ①표지전체의 디자인 ②양장본일 경우의 쟈켓(jacket) ③제목처리 ④등 글자의 처리 ⑤띠지 ⓑ케이스(Case), 박스(Box) ⑦클로드(Cloth) ⑧면지 등을 디자인하는 작업으로 나눌 수 있다.

5)이 ‘style’이라는 단어 속에는 시각적으로 두드러지는 제본, 색채, 형태, 크기, 재질, 배치(레이아웃)을 비롯하여 인쇄상태 등의 내용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6)한장본에 있어서 제본의 스타일은 여러가지가 있으나 가장 보편적인 형태로는 제작이 간편하고 튼튼한 선장본을 기본으로 삼아 분석하였다.

7)화영(花形:floret)이란 활판인쇄에 쓰이는 여러가지 문양으로 만들어진 장식용 무늬를 말한다. 활자와 동일한 합금으로 제작되며, 인쇄물의 외곽장식이나 띠의 모양으로 주로 쓰인다. 크기는 활자에 따라 다양하게 제작되어 있다.

8)이광린, 한국개화사상연구, 일조각, 1969, 80면/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제18권, 504면/전영표, 한국출판론, 대광문화사, 1991, 24면

9)박문국에 이어 1884년 3월에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출판사이다. 광인사는 본래 목활자 인쇄를 주로 해오던 민간 출판사로서 자가 인쇄시설을 보유함은 물론 처음으로 일본에서 연활자(鉛活字)를 구해서 <충효경집주합벽> <농정신편> 등 많은 책을 간행했다. 한자의 자모뿐 아니라 한글의 자모까지도 일본에서 구입하였다. 이 인쇄소가 남긴 의의는 최초로 국한문 혼용의 서적을 인쇄하기 시작한 데 있다. 한때 갑신정변으로 박문국 시설이 파괴되자 이를 광인사로 옮겨 신문을 인쇄할 정도로 규모가 컷다. 광인사는 개화파 인사들의 책을 출판해 신문화 수용과 출판문화 발전에도 크게 이바지 했다.

10)한국의 책문화특별전(도록), 대한출판문화협회, 1993, 97면

11)실제 이같은 예는 유길준의 <서유견문>, 장지연의 <접목신법>, 유근의 <신찬 초등역사>, 최현배의 <중등조선말본> 등에서 증명될 수 있다.

12)박암종, 조선의 고판화-현대목판화의 활용 가능성, 한국출판무역주식회사, 1992, 99~100면

13)개화기는 통상 1870년∼1900년대까지를 말하는데 이를 세 단계로 나누어 분류하고 있다. 그 첫 시기인 1870년대는 '개국(開國)'이라는 개념과 외국에 대한 지식수용이라는 측면에서, 둘째 시기인 1880년대는 외국의 학술과 기술수용에 의한 나라부강이라는 점에서, 세째 시기인 1890∼1900년대는 자주독립과 민권사상을 내세우는 사회운동의 형태로 개화의 개념이 확대된다. 이러한 구분에 따르면, 신소설은 세번째 단계에서 발생되고 성장한 서사 문예양식이다.

14)박암종, 한국디자인 100년사, 월간 디자인 1995년 8월호, 월간 디자인하우스, 135~136면

15)위의 책, 139면

16)위의 책, 139면

17)이상에 대한 디자인 측면에서의 접근은 필자가 <디자인>지 1992년 9월호‘화엄일승번계도와 해체시’와 안상수 교수의 한국디자인학회지 1995년 2월(통권9호)에 쓴 이상 연구에 관한 내용을 참고하길 바람.

18)김환기, 삽화와 장정, 환기미술관, 1993, 20면

19)당시(1950년대) 출판미술(제호, 장정, 컷, 삽화, 제호 등)가들의 활동상을 살펴보면, 출판사나 신문사에 일거리가 많아 능력있는 작가 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주로 선전 특선작가들에게 그림을 의뢰하는 경우가 많았다. 말 그대로 먹고 살기 힘드 궁핍한 시대였으니 너나 할 것 없이 그림그리는 재주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부업삼아 삽화를 많이 그렸다. (월간 <디자인>지 1996년 7월호 필자와의 대담에서 삽화가 김영주씨 구술)

20)본 연구를 진행하는데 있어 재야서지학자 박영돈님은 다량의 소장 도서를 기꺼히 제공해 촬영협조는 물론 그외에도 많은 조언을 아끼지 않아 연구에 큰 보탬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