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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과서에 관한 연구(변천사)
  
 작성자 :
작성일 : 2007-04-03     조회 : 1,145  


 
◇ ◇ ◇ 교과서(敎科書) ◇ ◇ ◇
< 강윤호 >
 개요
 [역사적 변천과정]
 [교과서에 관한 연구]
 참고문헌
(1) 1894년 이전의 교과서
전통시대의 전반적인 교육실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교육자료의 종류를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전통사회의 서당·향교·서원 등에서 사용된 교육자료를 종류와 분포별로 자세히 분류할 수 있다면 전통교육의 실상과 변화를 알 수 있는 유용한 기초자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분야에 대한 조사연구는 민족항일기에 서당을 대상으로 한 단편적인 것이 있을 뿐, 본격적인 조사연구는 아직 되어 있지 않다. 조선 후기의 유학자인 이상수(李象秀)가 제시하고 있는 교육자료의 종류는 크게 다음의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문자학습용 교재이다. 조선시대의 아동이 학습한 최초의 교육자료는 한자학습자료였다. 그 대표적인 교육자료의 양(梁)의 주흥사(周興嗣)가 지었다고 하는 《천자문 千字文》이다. 이 자료는 아동들의 한자학습자료의 구실 외에 유교의 정신세계와 접하게 하는 초보적 도덕교과서의 역할을 지니고 있다. 이 자료의 교육적 효과에 대한 논란이 커짐에 따라 이 자료를 보완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교육자료가 편찬되었는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을 몇가지 들면 《유합 類合》·《훈몽자회 訓蒙字會》·《아학편 兒學編》 등이 있다.

둘째, 훈석용(訓釋用) 교재이다. 《사략 史略》과 《통감 通鑑》이 대표적인 교육자료가 된다. 이 훈석용 교재는 아동이 한자의 자의(字義)를 깨치고 처음으로 경서(經書)를 학습하기 이전의 준비작업으로 학습하는 교재로 되어 있다.

셋째, 과거 급제와 유학연구 위주의 교육용 교재이다. 이이(李珥)·이익(李瀷)·안정복(安鼎福) 등은 유학자 양성을 위한 이상적인 모범을 제시하였고, 이에 적합한 교육자료가 제시되었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소학 小學》·《대학 大學》·《논어 論語》·《맹자 孟子》·《중용 中庸》·《시경 詩經》·《예기 禮記》·《서전 書傳》·《근사록 近思錄》·《주자대전 朱子大全》·《자치통감 資治通鑑》·《강목 綱目》 등을 들 수 있다.

(2) 1894∼1910년 이전의 교과서
정규학교에서 사용할 교과서가 편찬, 간행되어 사용된 것은 1894년 이후의 일이다. 1894년에서 1910년에 이르는 시기를 편의상 개화기라고 한다면 이 시기의 교과서편찬의 발단은 갑오년(1894)에 공포된 ‘독립에 관한 서고문(誓告文)’에 근거를 두고 있다. 고종은 청나라에 의존하여오던 정치노선을 버리고 자주독립의 기초를 확고하게 세울 것을 다짐하는 가운데 나라 안에 학교를 많이 세우고 총명한 자제를 널리 외국으로 유학보내어 학술과 기예(技藝)를 익히도록 할 것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고종의 의도는 <교육입국조서 敎育立國詔書>로 재천명되었다. 고종은 이 조서에서 교육은 나라를 보전하는 근본임을 강조하고, 지(智)·덕(德)·체(體)를 키울 것을 교육의 3대강령으로 삼을 것을 밝혔다. 이 조서를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시행법령이 공포되었는데, <학부관제>·<한성사범학교관제>·<외국어학교관제>·<소학교령>·<한성사범학교규칙> 등이 그것이다. 교과서에 대한 사항은 <학부관제>와 <학부분과규정>에 규정되어 있으며, 학부편집국이 교과서 업무를 관장하게 되어 있다. 이에 참고삼아 1896년도 예산에 반영된 교과서 행정에 관한 예산정책을 보면 5,000원으로 되어 있는데, 이 액수는 전체 예산의 0.08%에 해당한다.

이시기의 교과서편찬은 정부주도의 것과 민간주도의 것으로 나누어진다. 각급 학교가 설립되고 교육과정이 제정됨으로써 교과서편찬의 1차적인 업무는 정부주도하에 진행되었다. 정부주도하의 교과서편찬사업은 처음부터 일본인 편수관의 손에 의해 이루어졌고, 이들 일본인 편수관 내지 편수책임자들은 일본정부의 식민지교육기본방침을 염두에 두어 교과서를 편찬, 간행하였다. 이리하여 수신(修身)·국어·일본어·한문·이과·도화 등 6종의 교과서가 출판되었다. 1895년 학부편집국에서 출판한 《국민소학독본 國民小學讀本》과 《심상소학독본 尋常小學讀本》은 우리 나라에서 간행한 최초의 교과서로서, 신학제에 맞추어 사용하기 위하여 만든 실험용교재였다. 1908년 현재 학부에서 편찬한 교과서의 발행부수는 2만8071권이며, 1909년 현재로는 20만2936권에 이른다.

한편, 친일화 되어가는 정부의 교육정책에 따라 편찬된 정부주도의 교과서와는 달리 민족독립을 고취하는 민간인들에 의해 교과서가 편찬되었는데 이것이 민간주도하의 교과서편찬사업이다. 사립학교 설치가 인가되고 교육회와 학회가 국내 각지에 설립되면서 사립학교에서 사용할 목적으로 교과서가 민간주도하에 편찬되었다.

이 교과서는 정부주도하에 이루어진 친일경향이 두드러진 교과서와는 달리 민족독립과 항일정신이 고취된 내용을 담은 것이었다. 따라서, 민간주도하에 편찬된 교과서는 머지않아 정부당국의 압력을 받게 되어 마침내 1908년 8월 공포된 <교과용도서 검정규정>에 따라 제약을 받게 되었고, 1909년 5월까지 제출된 민간주도 교과서의 총검정 출원부수 117부 가운데 인가된 것은 55부에 지나지 않는 결과를 가져왔다. 특히, 민족교육과 관련이 깊은 수신·국어·한문·역사·지리 교과서는 1908년에서 1910년 5월 사이에 77권의 신청건 중 22권만이 발행인가를 받는 실정이었다.

1909년 이후 통제가 더욱 심해짐에 따라 5월 5일에 공포된 <출판법>에 의거 현채(玄采)의 《유년필독 幼年必讀》·《유년필독석의 幼年必讀釋義》·《중등교과동국사략 中等敎科東國史略》, 이상익(李相益)의 《월남망국사 越南亡國史》, 안국선(安國善)의 《금수회의록 禽獸會議錄》, 윤치호(尹致昊)의 《우슨소리[笑話]》 등이 국가안녕질서문란 혐의로 발매금지처분을 받았다.

(3) 1910∼광복 이전의 교과서
1910년부터 1945년에 이르는 일본통치시기의 교육은 일본의 식민지교육정책을 바탕으로 수행된 것이다. 이 시기의 교과서는 우리 국민에게 식민지교육을 강압적으로 실시하기 위한 교육자료의 구실을 한다. 이러한 일본의 식민지교육정책은 1911년에 공포된 <조선교육령>을 발단으로 한다. 이후 제2차(1922), 제3차(1938) <조선교육령>을 통하여 식민지언어정책이 강화되었다. 국어는 조선어로, 일본어는 국어로 개칭되었다. 우리말의 학습시간은 점차 감축되었고 일본어의 학습시간은 반대로 증가하여갔다.

이러한 현상은 마침내 <조선어과폐지>로 나타났고, 우리말의 사용이 학교생활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통제, 금지되었다. 1922년에 <사립학교규칙>이 공포되면서 사립학교에서 사용할 교과서는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하거나 검정을 거친 것, 또는 인가를 받은 것으로 한정되었으며, 인가를 받으려 할 경우, 인가여부는 오로지 조선총독부의 재량에 따라 결정될 수 있도록 하였다. 이 시기의 교과서의 인쇄·체재면은 앞 시대에 비하여 월등하게 향상되었으나, 내용면에서는 식민지정책 수행을 위한 정신강화에 집중되어 있다.

(4) 1945∼1948년 정부수립 이전의 교과서

광복과 함께 남한에 설치된 미군정은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고 우리 나라에 적합한 민주주의 교육을 실시하기 위한 준비에 착수하였다. 이에 따라 교과서 편찬에 종사할 전문가 확보에 전력을 다하였다. 그러나, 당시의 실정으로는 민주주의 교육에 적합한 교과서를 편찬할 수 있는 사람을 국내에서 거의 찾을 수 없었고, 더욱이 이러한 일에 앞서 우선 전국민에게 한글을 가르칠 전국민대상의 국어교과서 편찬이 시급하였다.

이리하여 1945년 9월, 미군정청이 위촉한 60명의 인사로 한국교육심의회가 발족케 되었고, 새 교육방침이 마련되었다. 그해 9월 조선어학회는 초등용 국어교과서와 성인용 국어교과서를 인쇄, 배포하였고, 미군정청 학무국은 우리 나라의 교육방침을 공표하게 되었다. 이 교육방침은 교수요목(敎授要目)이라는 이름으로 구체화되어 공포됨으로써 초등학교는 6개교과, 중등학교는 8개교과로 된 교육과정의 일부가 마련되었다. 아울러, 아동들에게는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데 교육의 중심지표를 둔 교수요목에 따라 교과서편찬방침의 골자가 마련되었다.

이에 따라, 1945년 11월 광복후 최초의 국어교과서인 《한글첫걸음》이 출판되어 초등·중등학교의 공통교재로 공급되었다. 1945년 11월 15일부터 1946년 2월 15일까지 인쇄된 각종 교과서는 위의 《한글첫걸음》 이외에 초등학교용으로 《국어독본》·《상·중·하》·《공민》·《음악》·《습자》·《지리》·《국사》, 중등학교용으로 《국어교본》·《국사》, 교사용으로 《교사용 국어독본》 등이 간행되었다. 1947년 12월 군정청이 발표한 교과서편찬은 총 134종으로, 이 가운데 초등교과서가 41종, 중등교과서가 70종, 대학 및 전문학교교과서가 23종에 달하였다.

군정청이 주도한 교과서 편찬사업과 함께 민간 유지들에 의한 교과서편찬사업을 들 수 있다. 1945년 9월 조선어학회는 한글학자와 교육관계자 등 20명으로 구성된 교재편찬위원회 결성에 주동적 역할을 함으로써 다음과 같은 사업내용을 확정하였다. 1) 성인용 《한글입문》발간, 2) 초등학교 및 중등학교용 국어교과서 편찬, 3) 한글교사양성을 위한 단기강습회 개최. 이러한 계획에 따라 조선초등교육건설회가 결성되었고, 다시 조선아동문화협회가 조직됨으로써 교과서편찬사업이 구체화되었다. 한편, 민간학술단체인 진단학회는 1946년 6월 중학교용 《국어교과서》를 편찬, 발행하였다.

(5) 1948∼1990년의 교과서
이시기의 교과서편찬단계는 1) 대한민국 수립당시의 교과서, 2) 1950년부터 제1차 교육과정 시행기(1955∼1963)까지의 교과서, 3) 제2차 교육과정 시행기(1963∼1972)의 교과서, 4) 제3차 교육과정 시행기(1973∼1982)의 교과서, 5) 제4차 교육과정 시행기(1982∼1990)의 교과서, 6) 제5차 교육과정 시행기(1990∼ ) 의 교과서 등 여섯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1) 대한민국 수립당시의 교과서
정부수립 이전에 미군정청과 민간에서 많은 수효의 교과서가 편찬, 발간되었다. 그러나, 교과서의 편찬·발간·공급을 위한 유기적인 기능이 갖추어지지 못한 상황이었으므로, 정부수립 이후에도 교과서 행정에 어려움이 많았다. 가령, 한 사람의 편수관이 초등학교의 전학년의 교과서를 편찬하여야 하였고, 편수관 개인의 취향에 따라 교과서가 편찬됨으로써 현장학습에 혼란이 일어나는 따위의 부작용이 있었다. 그러나, 단원제 편성에 따른 교과서 편찬방식이 채택됨으로써 초등학교의 국어교과서의 경우, 자모중심의 문자학습에서 음절중심의 문자학습으로, 단어중심의 독자(讀字)학습에서 문장 중심의 독자학습으로, 독립된 과(課)중심의 학습에서 유기적인 단원학습으로, 생활경험을 중요시하는 학습방법으로 국어학습방법이 향상되는 장점이 생겼다.

2) 1950년부터 제1차교육과정 시행기까지의 교과서

6·25동란은 광복후의 교과서편찬의 발전역량을 위축시키는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 그러나, 1951년 <전시임시교육령>을 마련한 문교부는 어려운 상황아래에서 학생들에게 임시교재를 공급하였다. 당시 공급된 임시교재로는 초등학교용의 《전시생활》과 중등학교용의 《전시독본》이 있다. 이 교재는 주로 반공과 통일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편, 1955년에 마련되어 1964년까지 시행된 제2차 교육과정은 우리 나라 최초의 민주적 교육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학생의 발달과정과 능력·개성 신장에 맞게 교육내용을 안배하도록 한 이 교육과정은 교재의 내용을 융통성있게 꾸미고 한편으로는 생활에 중심을 둔 교과내용을 취하도록 하는 실용적인 점이 강조되었다. 이에 따라, 1955년 국정교과서·검정교과서·인정교과서가 편찬, 발간되었고, 교과서 검인정규정에 관한 세부지침이 작성, 배포되었다. 1958년에 편찬을 완료한 국정교과서는 총 96종이며, 고등학교 3학년용 국어와 초등학교용 사회생활부도의 2종은 1959년부터 편찬에 착수하였다.

3) 제2차 교육과정 시행기의 교과서
제1차 교육과정 시행 이후의 시대적 변천 및 학문의 발달상황 등을 감안하여 1963년 제2차교육과정을 제정, 공포하였다. 제2차 교육과정은 기초학력을 중요시하고, 교육과정계열의 합리화를 추구하는 가운데 교육과정의 전체구조를 교과활동, 반공·도덕생활, 특별활동 등 3층구조로 조직하였다. 자주성·생산성·유용성을 강조함으로써 국가발전에 부응하는 국민을 육성하는 데 기여하도록 짜여진 교육과정의 내용에 따라, 제1차 교육과정 시행기의 교과서와 동일한 종류를 3개년 계획으로 편찬, 발행하였다. 국정교과서는 초등학교의 경우 1965년부터 사용할 교과서가 편찬되었고, 고등학교의 경우는 1966년부터 사용할 교과서가 편찬되었다. 검인정교과서의 경우, 1963년 2월 15일자로 검인정실시가 공고됨으로써 중학교용 검인정교과서가 1965년 6월 6일자로 확정, 43개 출판사에서 91종, 203권의 검인정교과서의 발행이 허가되었다.

4) 제3차 교육과정 시행기의 교과서
1973년부터 1974년에 걸쳐 제정된 각급 학교 교육과정은 국적 있는 교육, 주체성을 지닌 교육, 유신이념 실천을 위한 교육 등 국민정신교육이념을 강력하게 내세운 것이다. 이 시기의 교과서 편찬 및 공급은 두 단계에 걸쳐 살펴볼 수 있다. 첫 단계는 1973∼1977년까지의 시기로, 국정교과서와 검인정교과서를 1종도서, 2종도서로 개칭하였고 모든 교과서의 편찬·발행은 문교부가 주관하였다. 초등학교의 경우, 1973년부터 1∼3학년이 1974년부터 4∼6학년이 새 교과서를 사용할 수 있도록 조치하였고, 이전의 교육과정 시행기와는 달리 교과서를 편찬·발행하기 1년 전에 집필과정을 밟고, 다시 1년 동안 현장교육용 교과서를 사용, 수정보완을 하도록 하였다. 이 시기의 교과서편찬에 있어서는 1교과에 1교과서주의를 채택함으로써 다양한 교과서를 통제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중고등학교 교과서의 경우는 새 교육과정에 규정되어 있는 검정공고에도 불구하고 단일화된 운영방법을 채택함으로써 176종 350책의 교과서가 14종 27책으로 축소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둘째 단계는 1978년∼1981년까지의 시기로, 이 시기는 우리 나라 교과서행정에 큰 변혁을 가져온 시기라 할 수 있다. 곧, 교과서 편찬사업을 편수관이 전담함으로써 일어날 수 있는 부작용을 없애고 교과서 질적 향상을 기하기 위하여 종래의 국정교과서를 1종교과서로 하고, 검인정교과서를 2종교과서로 하는 교과서 편찬체재를 바꾸고, <문교부직제>를 개편하여 종래의 편수국을 장학실에 통합 운영하는 조치를 취하였다. 이에 따라, <교과용도서 검인정령>은 폐지되고, 새로 제정된 교과용 도서에 관한 규정에 따라 1종도서의 범위가 크게 확대되었다. 곧, 편수관이 전담하였던 교과서펀찬업무가 당시의 문교부가 위촉한 연구소나 학회, 혹은 전문교육기관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이러한 1종도서편찬담당범위가 확대됨으로써 상대적으로 2종도서의 편찬담당범위는 축소되었다. 이를 참고삼아 1977년에 공고된 2종도서의 검정대상 교과서를 보면, 인문계 고등학교의 경우 문법·작문·한문(1·1)·독일어·프랑스어·중국어·에스파냐어·일본어·서예 등 교과서와 이에 딸린 지도서, 사회부도 등 23개 교과목에 해당되는 교과서가 제시되었고, 1978년도에 검정신청한 305책 가운데 106책이 인가되었다.

5) 제4차 교육과정 시행기의 교과서
1982년부터 1990년에 걸쳐 시행된 이 교육과정은 국민정신강화를 골자로 하고 있다. 초등학교의 편찬업무는 한국교육개발원에 위촉되었다. 한국교육개발원은 1982년에 1∼3학년 교과서를 편찬하였고, 1983년에 4∼6학년 교과서 편찬계획을 세웠다. 제4차교육과정 시행기에서 주목할만한 것은 유치원 교육자료개발이 시도되었다는 점이다. 당시의 문교부는 1980년, 한국행동과학연구소에 유아용 그림책 10책을 개발하여줄 것을 위촉하였고, 이와 병행하여 유치원교사용 지도서와 함께 개발·편찬토록 하였다. 중고등학교 교과서의 경우, 제3차교육과정 시행기와는 달리 1종도서의 범위는 축소되고 2종도서의 대상은 확대되었다. 이러한 변동은 다양한 종류의 교육자료를 현장에 공급하려는 문교정책의 변화에 따른 것이다.

문교부는 이러한 문교정책 전환을 법제화하기 위하여 교과용 도서에 관한 규정을 개정하여 1종 도서의 대상을 개정하였다. 중학교의 경우 1종 교과서의 범위를 국어, 도덕, 국민윤리, 국사, 사회에 국한시키고, 나머지는 모두 검정의 대상이 되도록 2종 도서의 범주에 포함시켰다. 1종 도서의 범위를 줄이고 2종 도서의 범위를 확대하는 문교시책의 전환은 교과내용의 획일성을 피하고 다양한 형태의 교과서를 현장에 제공할 수 있게 하려는 데 있었다.

6) 제5차 교육과정 시행기의 교과서
1989년 3월 1일과 1990년 3월 1일자로 시행된 제5차 교육과정은 제4차 교육과정 기본골격을 유지하면서 필요한 부분만 부분적으로 개정되었다. 이 때는 교육과정의 적정화, 내실화, 지역화를 강조하였다. 특히 '지역화'는 지금까지의 중앙집중식에서 지방분산화가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어, 지역특성, 학교특성을 살려 부분적으로 지역단원을 신설하여 교육할 수 있게 되었다.

초등학교 1~2학년 교과목의 통합이론은 교과영역의 특성상 재조정되었다. 그리하여 국어와 산수가 부활 독립되었고, 바른생화, 슬기로운 생활, 즐거운 생활은 유지되었다. 그러나 3~6학년의 교과구분은 도덕, 국어, 사회, 산수, 자연, 체육, 음악, 미술, 실과(4~6학년), 그리고 특별활동 등 총 10개 영역으로 구분되었다.

7) 제6차 교육과정 시행기의 교과서
제 6차 교육과정은 1992년도에 고시되어, 1995년도부터 적용되었다. 이 교육과정은 첫째, 지방분권형 교육과정으로 시도 교육청의 독립과 함께 지역 및 학교의 교육과정 편성, 운영의 재량권을 부분적으로 허용하였다. 둘째, 선택과목의 확대와 교과 내용의 축소를 강조하였다. 그리하여 수업시간수와 이수 단위수를 감축하였다. (예: 고교 이수단위 감축 204~616단위에서 204단위로) 셋째, 학생의 적성 능력 진로를 고려한 '학교 교육과정'을 각급 학교에서 편성토록 제도화하였다. 특히 초등학교에서 '학교재량시간'이란 재량활동시간을 제정하여, 교과활동과 특별활동 2대 영역이었던 것이 3대 영역으로 구성된 교육과정이 마련되었다. 그리고 일제시대에 국민총동원 및 황국신민화정책을 실시한 전체주의사상에 기반을 둔 '국민학교'란 호칭이 드디어 '초등학교'란 이름으로 바뀌어(1996.3) 우리의 교육에서 일제의 잔재를 벗고 독립성을 찾는 또 하나의 혁신을 이룰하였다. 초등학교 교과목 가운데 산수가 국제화시대에 맞추어 산수의 수준이 아니 수학의 개념이 초등학교 수준에서부터 반영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따라 '수학'과목으로 개칭되었다. 중학교에서는 한문, 컴퓨터, 환경 과목이 선택과목으로 신설되어, 사회의 변화상을 반영하였다. 국사과목은 통합이론에 따라 '사회과'에 통합되어 과거 독립된 교과로서의 위치를 상실하였다. 그러나 교과서는 종전에 똑같이 국사 상하로 구분하여 편찬되었다. 고등학교 교과서 가운데 '공통사회'와 '공통과학' 과목을 개설하여 기초영역으로 이수할 수 있도록 하였다. '공통사회'는 세계사, 지리, 일반사회 영역을 통합하여 담도록 되어 있었으나, 교과서 개발과정에서 이론(異論)이 많아 '지리' '일반사회'의 교과서로 나뉘어 편찬되었다.

8) 제 7차 교육과정 시행기의 교과서
제7차 교육과정이 1997년 12월 다시 개발 공표되었다. 2000년부터는 제7차 교육과정에 따라 개발되는 새로운 교과서가 학교 급별로 연차적으로 개발, 보급되도록 계획이 수립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