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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씨통(청명(淸明)과 한식(寒食) 이야기)
  
 작성자 :
작성일 : 2007-03-29     조회 : 945  


청명(淸明)과 한식(寒食) 이야기
 
청명은 24절기의 다섯째이고, 양력 4월 5~6 일께 온다. 또 해의 황도(黃道)가 15도에 있을 때이며, 한식의 하루 전날이거나 같은 날일 수도 있고, 춘분과 곡우 사이에 있다. 옛 사람은 청명 15일 동안을 3후로 나누어, 초후는 오동나무의 꽃이 피기 시작하고, 중후는 들쥐 대신 종달새가 나타나며, 말후는 무지개가 처음으로 보인다고 하였다.

이날 성묘를 간다. 옛날엔 봄에는 청명, 여름에는 中元(중원, 음력 7월 15일), 가을에는 한가위, 겨울에는 동짓날에 성묘를 했다.

봄 농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며, 논 밭둑을 손질하는 가래질을 품앗이로 한다.

청명과 한식(寒食)은 겹치거나 하루 차이이다. 그래서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라는 속담이 생겼다.

[동국세시기]의 기록에 의하면 청명날 버드나무와 느릅나무를 비벼 새 불을 일으켜 임금에게 바친다. 임금은 이 불을 정승, 판서, 문무백관 3백 60 고을의 수령에게 나누어준다. 이를 사화(賜火)라 했다. 수령들은 한식(寒食)날에 다시 이 불을 백성에게 나누어주는데 묵은 불을 끄고 새 불을 기다리는 동안 밥을 지을 수 없어 찬밥을 먹는다고 해서 한식(寒食)인 것이다. 이렇게 하여 온 백성이 한 불을 씀으로써 같은 운명체로서 국가 의식을 다졌다.

꺼지기 쉬운 불이어서 습기나 바람에 강한 불씨통(장화통:藏火筒)에 담아 팔도로 불을 보냈는데 그 불씨통은 뱀이나 닭껍질로 만든 주머니로 보온력이 강한 은행이나 목화씨앗 태운 재에 묻어 운반했다.

중국에서 내려오는 한식의 유래는 다르다. 춘추시대에 진나라 문공(文公)이 충신들에게 상을 주었는데 이 때 문공이 굶주렸을 때 자신의 허벅다리 살점을 베어 바쳤던 충신 개자추(介子推)가 포상에서 빠졌다. 이에 그는 부끄러워 산 속에 숨어버렸다.

문공이 훗날에야 잘못을 뉘우치고 그를 찾았으나 산중에서 나오지 않자 나오게 할 목적으로 산에 불을 질렀다. 그러나 끝내 나오지 않고, 불에 타죽었다고 한다. 그 후 그의 죽음을 슬퍼하여 이 날은 불을 쓰지 않고, 찬 음식을 먹는다 하여 한식(寒食)이라 했다고 전해진다.

청명에는 청명주(淸明酒)를 담아 먹었다. 춘주(春酒)라고도 한다. 찹쌀 석 되를 갈아 죽을 쑤어 식힌 다음, 누룩 세 홉과 밀가루 한 홉을 넣어 술을 빚는다. 다음날 찹쌀 일곱 되를 깨끗이 씻고 쪄서 식힌 다음, 물을 섞어 잘 뭉개어서 독 밑에 넣고 찬 곳에 둔다. 7일 후 위에 뜬 것을 버리고 맑게 되면 좋은 술이 된다.

청명, 한식이면 나무를 심는데 특히, `내 나무'라 하여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 시집 장가 갈 때 농짝을 만들어줄 재목감으로 나무를 심었다한다. 이 때 "한식 날 심은 내 나무/ 금강수(金剛水) 물을 주어/육판서(六判書)로 뻗은 가지/각 읍 수령(守令) 꽃이 피고/삼정승(三政丞) 열매 맺어..."라는 '내 나무 노래'를 불렀다 한다. 연정(戀情)을 품은 아가씨가 있으면 그 아가씨의 '내 나무'에 거름을 주는 것으로 사랑을 표시하기도 했다